[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전국이 구제역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6개 시도 128곳을 휩쓸었다. 18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처분, 매몰된 가축은 210만 5000여마리에 달한다. 설 연휴 민족대이동을 맞아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각 지역자치단체들은 방역 '전쟁'에 나선 상황. 일례로 경남도는 이번 설 연휴동안 구제역이 발생한 다른 시'도의 친인척이 방문하지 않게 해 달라고 나섰을 정도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구제역 긴급 정책토론회를 열고 구제역 원인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해외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채찬희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 구제역 바이러스와 작년 봄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이 99% 일치한다고 한다"며 "국내 구제역의 경우 아직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초 구제역 발생이 베트남 방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도 구제역이 발생하는 아시아국가 방문 후에 국내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말 방역당국의 조사 결과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한 양돈 농가 농장주가 10월 초 베트남 여행을 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축산 농가가 전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분뇨차, 사료차가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는데다가 소, 돼지 도축이 해당 농장 소재지 밖에서 많이 이뤄져 전파 속도가 더욱 빨랐다는 분석이다. 올 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도 구제역 확산에 일조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온이 떨어질수록 생존 기간이 길어진다. 옷이나 신발에 묻은 구제역 바이러스는 여름에는 9주간 생존하는데 비해 겨울에는 14주간 생존한다. 토양에 떨어진 바이러스도 여름에는 3~7일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반 겨울에는 21주간 살아남는다.
구제역 백신 접종의 효력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이 최선책이라는 주장도 제시됐다. 최근 구제역 백신 접종은 소에 이어 돼지까지 확대됐다. 이중복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먼저 모돈에 백신을 접종한 후 새로 태어나는 자돈이 발병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운좋게 모돈에 접종한 백신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청정국으로 조속한 시일 내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채 교수는 "대만의 사례를 보면 1997년 백신 접종 후 사후 대책에 소홀해 지금까지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며 "백신 접종 여부만큼 중요한 것이 사후관리"라고 강조했다.
침출수로 야기되는 환경 오염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던 가축은 살처분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은 바이러스를 계속 배출하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살처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 채로 가축을 묻다 보니 가축 매몰지로부터 피가 섞인 침출수 누출이 신고되는 등 2차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강근 한국지하수토양학회장은 "가축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에는 질소화합물이나 병원성 미생물, 항생제 등의 오염물질이 섞여 있을 수 있다"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오염물질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구제역 살처분 규모가 차원이 다른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학회장은 "침출수가 지하수 오염을 야기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오염된 지하수가 지표면이나 생태계로 유출돼 상수원 오염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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