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세 못잡는 방역대책, 국내 축산업 ‘위기일발’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전국 가축 200만마리를 집어삼킨 구제역이 50일을 넘도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는 가축전염병이 아닌 국가적 ‘재앙’사태로 축산농가는 물론 온 국민이 불안에 빠진 모습이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진 것은 정부의 안일한 초기대응 탓이다. 경북 안동시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신고된 것은 지난해 11월23일이지만 방역당국이 확인한 시기는 29일이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을 무려 엿새간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이렇다보니 백신을 비롯한 차단방역 마저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지역의 한우와 차량을 초기에 통제하지 못해 백신접종은 물론 살처분 속도가 구제역 확산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쉬운 초기대응 ‘살처분’에만 집중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구제역 사태를 ‘인재’로 판단하고 있다. 육지의 경우 바람을 타면 최대 50km까지 전파되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상 초기에 신속하고 강력한 차단 방역 시스템을 운영했다면 진압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주 열린 ‘구제역 및 AI 현황과 대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채찬희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최초 의심가검물이 의뢰됐을 때 수의과학검역원에서 정밀 진단을 했다면 초동방역을 효과적으로 진행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구제역이 발생했음에도 이동을 제한하지 않는 등 올바른 방역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초반부터 구멍을 보인 방역시스템으로는 구제역이 발생한지 보름이 넘도록 살처분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같은 ‘예방적 살처분’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반경 500m~3㎞ 이내의 우제류 등을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모조리 살처분하고 있음에도 지금의 확산세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안일한 방역태도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초 보령 지역의 한 수의사가 구제역 첫 발생지인 경북 안동을 방문한 뒤 신발을 갈아 신지 않고 돌아와 결국 예방차원에서 돼지농가 2곳의 2만5000마리가 살처분됐다.
◇계속되는 뒷북 대응, 농가불안 가중
백신 접종시기를 잘못 판단한 것도 구제역 확산에 한몫했다. 실제 정부는 구제역이 발생한 지 한달뒤인 12월25일에야 백신카드를 내놓았다.
정부가 백신 도입을 장고한 이유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유지 때문이다. 접종이 시작되면 최소 6개월 동안은 청정국 지위를 잃게돼 수출에 있어 불리한 입장에 서게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정부는 초기 접종대상을 소에 한정했다. 바이러스 전파력이 소의 3000배에 달하는 돼지는 개체수가 많다는 이유로 열흘이나 뒤늦게 접종을 시작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같은 ‘사후약방문’식 대처로는 구제역 확산세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여기에 1차 예방접종으로 항체가 형성될 확률은 85%로 그나마 2주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축산농가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백신을 접종한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도 정부 대응책의 불신을 키웠다. 경기도의 경우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기간동안 매몰대상 가축수는 더욱 늘었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백신을 투여한 소 수십여마리가 폐사하거나 유산하는 사례가 일어났다.
일부 농가에서는 백신접종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농장주들이 백신을 맞은 소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 하락을 우려해 백신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한 백신접종이 필요하지만 최근 농가의 반발에다 강추위까지 겹쳐 일부 지역의 접종 진척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배경환 기자 khba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