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4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 저녁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나온 김서연(33·주부) 씨는 해산물 코너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고등어 조림을 하려고 했는데 한 마리에 5500원이래요. 파도 한 단에 3800원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너무 올랐네요."
연초부터 물가 오름세가 무섭다. 어획량이 줄어 수산물 가격이 급등한데다 오랜 추위로 채소 값도 좀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만류에도 두부와 설탕 등 식가공품 값은 줄줄이 올랐고, 휘발유 값도 리터당 2000원까지 치솟았다. 설 전후 물가 불안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밀가루 값 인상이 예고된데다 각종 제수용품 가격이 들썩일 수 있어서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잰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승전(勝戰)을 점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소·가공식품·휘발유 값 高高
통계청의 52개 주요생필품 소비자물가 동향, 일명 'MB 지수'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고등어 가격은 1년 새 59.2% 뛰었다. 파(88.4%)와 마늘(85.4%)처럼 널리 쓰이는 양념류 채소의 시세도 90% 가까이 급등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크게 나빠진다. 지난해 가을 '배추파동' 당시에도 전반적인 물가 수준에 비해 채소 값이 급등하자 체감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문제는 채소 값만 잡는데에도 골머리를 썩었던 그 때보다 물가 여건이 더 좋지 않다는 점이다. 새해 벽두부터 도시가스 요금이 평균 5.3% 올랐고, 배럴당 90달러대를 돌파한 국제 유가는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2000원 선까지 끌어올렸다.
원당과 대두 시세가 올라 식가공품 가격도 줄인상됐다. 정부가 가격 인상 시점을 설 이후로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CJ제일제당은 설탕 출고가를 평균 9.7% 인상했고, 두부 제조 업체들도 일제히 포장두부 가격을 올려 풀무원 두부는 평균 20.5% 비싸졌다. 코카콜라도 1일부터 제품 값을 4.2∼8.5% 올렸다. 다음 달 설(2월 3일) 즈음에는 15% 남짓 밀가루 값 인상도 예고돼있다. 나아가 구제역 파동에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확산된다면, 축산물 가격도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
◆13일 또 물가대책
1분기를 물가 관리의 고비로 보는 정부도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5차례나 물가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13일 또다시 겨울철 물가안정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전기요금·도로통행료·고속버스 요금 등을 동결하고,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자제하도록 권하면서 채소와 수산물 공급량을 늘린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를 위해 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기획재정부 임종룡 1차관 주재로 각 부처 1급들과 물가안정대책회의를 연다. 여기서 모인 부처별 대책을 갈무리해 7일에는 당정협의를 벌이고, 13일 새해 첫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최종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물가잡기'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4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서민을 위해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갖고 물가 억제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한 부처별 관리 방안을 조속히 수립하라"면서 "(인상이)불가피한 것은 속도를 늦추고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억제하라"고 주문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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