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획취재]카이스트 입학사정관 전형을 벗긴다-3편

시계아이콘02분 07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카이스트 입학사정관 전형을 벗긴다-3편
담임 선생님이 본 규철이의 합격비결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이규철 학생은 2008학년도 과학고 입시에 실패하고 우리 학교에 왔다. 오랜 고민 끝에 '기숙형 자율학교'라는 이유 하나 만을 보고 선택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 학교 설립 이래 최초로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사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카이스트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찾아왔을 때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사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설립이래 단 한 명도 합격시킨 사례가 없는 학교니까 못 믿겠다는 듯한 태도가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내가 대입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 설움을 규철이가 떨쳐준 셈이다. 당연한 결과다. 입학사정관이 그렇게 찾는 '자기주도 학습' 전형의 표본이 바로 규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대입 성공 비결은 우리 학교가 '기숙 학교'라는 점이다. '사교육 제거'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리 반은 모두 33명인데 아무도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사실 못 다니는 거다. 그 가운데 한 명이 규철인데 그는 철저하게 학교에서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했다. 수학을 가르쳐보면 가끔 특출난 아이들이 있다. 출제자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까지 고민한다. 규철이가 그랬다. 그러면서그런 부분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설명해줬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그대로 서로 가르치며 성장했다. 기숙사에 들어오면 한 달에 딱 한 번만 외박을 할 수 있다. 놀 것 없고 할 것 없는 기숙사에서 책과 그 속에 담긴 원리만 파고 든 것이다.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수상. 이런 것들은 그동안 과학고 학생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일반고에선 시도조차 잘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규철이는 용기있게 도전해서 상까지 받아왔다. 사교육도 받지 않았고 특별히 학교에서 따로 준비시켜준 것도 없었다. 수학 동아리를 만들어서 대학에서 세미나 하듯 저희들끼리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물론, 정말 몰라서 물어보면 도와줬다. 하지만 일부러라도 꾹 참았다. 스스로 해야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교사로서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로 학생들을 가르쳐보니까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었다. 평생 공부를 해야하는 이공계열 학생에게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수업시간 풀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왜?" "왜 이렇게 되는데?"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당황해 한다. 아이들에겐어려운 물음이다. 하지만 규철이는 달랐다.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서류 전형을 거쳐 방문 면접, 토론 면접, 심층 면접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형을 제대로 준비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규철이랑 얘기해서 나온 우리의 전략은 간단했다. '스펙' 더 좋은 애들은 아주 많다.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잠재력을 보여주자.


그리고 하나 더해 '디테일'에 신경쓰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공부했고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줬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의고사 수리과목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1등급이었다. 특히 화학 1 과목 중 축합 중합체에 대한 호기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교사추천서에 가감없이 썼다. 전공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대단했다. 나노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것이 꿈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규철이는 자신의 롤 모델로 유룡 교수를 꼽았다. 유 교수는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로 나노기술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존경하는 유 교수와 같은 학자가 되길 꿈 꾼다는 것으로 규철이는 학문과 학교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보여줬다.


규철이가 처음 우리 학교에 올 때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사교육 특구 일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 경기과학고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떨어지고 나니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일반 인문계고에 가서 공부할 지, 기숙학교를 갈지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일반고로 가면 계속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고 기숙학교로 오면 혼자 공부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혼자 계획을 짜고 스스로 공부해서 이뤄내는 과정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 "규철아, 카이스트에 입학해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우선 네가 꿈꾸던 공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너를 보며 카이스트를 꿈 꾸는 후배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도 좋은 고등학교,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아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너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다."
- 박진영 양서고 교사




이상미 기자 ysm125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