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같은 집에 살고 계십니까?
편집자주: 양 승 열(楊 昇 烈). 울산에서 성장하며 조그만 공단도시가 인구 100만 명의 광역시가 되는 과정을 보고 자랐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고 도심활성화를 주제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소속으로 용산역세권개발 설계단에서 일하고 있다.
"문명은 3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 진 truth 선 goodness 미 beauty 이는 곧, 과학 science 윤리 ethics 예술 art 이다. 이 모든 것은 일상 언어다"라는 말을 기억해 내고는 일상 언어로서의 건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건축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는 아파트에 관한 것이다.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서울의 집값 동향에 대해 물어오면 잘 모른다고 답하다가도 어느새 대화에 동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2005년 주택의 종류별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아파트가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2%를 웃돌며, 서울 기준으로는 54%를 넘어서서, 규모면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유형이 됐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24평형, 32평형으로 분류되는 아파트 상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 이유는 부동산으로서의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이런 아파트 기세에 비춰보면 건축하는 사람에게 부동산을 꼼꼼히 물어보는 연유를 알 것도 같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가지는 위상은 지대하다. 정책, 산업,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더니,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 아파트에 관한 연구 자료를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하기에 이르러 글로벌한 이슈가 됐다.
혹자는 아파트 재개발이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을 지웠다고 말한다. 재개발에 따른 물리적 소멸이 자신의 추억과 기억이 스며있는 장소를 가져가버린 것에 대한 울분일 것이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도 도시민의 욕구에 맞춰 인테리어 바람이 한참 불고 있다. 같은 평수, 같은 공간에서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자아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획일적인 공간, 경제적 가치 외에 다른 잣대를 대기 어려운 아파트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부동산이 아닌 주거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나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의 대안으로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찾고 있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
63.02º
도꾜 나카노의 주거지역에 계획된 소호(SOHO;Small Office Home Office, 소규모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주거의 형태) 건물이다. 대지 48.84㎡(약 15평, 1평은 법정 계량단위로 약 3.3㎡에 해당하며 지금은 쓰지 않는 표기.)의 땅에 연면적 71.40㎡(약 22평)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이 작다보니 별도의 방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1개의 층이 1개의 공간으로 끝난다.
도로에 면해 입구와 창호를 내지 않고 이웃집 담벼락 쪽으로 63.02º 비스듬히 돌아앉았다. 이웃 담장을 넘어 벚꽃나무가 있다. 건물의 파사드(Facade;건물 전체의 인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입면)는 철저하게 벚나무를 향한다.
이웃 담장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마당은 방문자의 시각을 깊게 받아들여 작은 대지에 깊이를 더했다. 3개의 층은 큰 유리창으로 면분할하여 흰색과 어울리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다. 1층 현관은 파사드의 면보다 깊게 파여서 어디가 정문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건축가는 목적에 따라 선을 그린다.
이 나카노의 주택이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정리 된 외형 때문이 아니다.
도로에 면하여 파사드를 만든 것도 아니고 90º 도 아닌 63.02º라는 모호한 각도에 건물을 악착같이 맞춘 목적이 명확해서다. 건물의 대지는 48.84㎡의 면적으로 예전 표기로 15평이 안 된다. 대지 모양이 장방형으로 반듯한 것도 아니어서 작고 쓸모없는 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건물 내부에서 보여준 장면은 건축가가 왜 작도하기 까다로운 각(角)을 선택하여 선을 그렸는지 잘 말해준다.
시원하게 투명한 큰 유리창은 작은 집을 넓어 보이게 한다. 마을의 이웃집과 가로수인 벚나무 아래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갈 것 같다. 빛이 한가득 들어오는 정제된 공간에 선홍색 가구로 효과를 줘 따스한 봄날을 연출했다.
3층 공간은 사선의 벽으로 더 협소한 장소지만 충분한 채광으로 좁아 보이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가구를 뒤로 하고 더 가까이에서 나무를 보게 하였다. 더 많은 하늘이 보이는 다락방이 됐다.
‘건축가는 목적에 따라 선을 그린다.’고 했던가?
2층과 3층에서 보여준 장면은 “분홍색 벚꽃의 장관을 보라.”, “거대한 장벽이 아닌 이웃집 골목 귀퉁이와 멀리 보이는 하늘 보라!” 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이지 작은 건물 안에 매력적인 공간을 담고 있다.
획일성 속에 피어나는 욕구
지금은 아파트 평면이 다양해진 편이지만, 아직도 ‘아파트 실내 구조는 뻔하다’는 견해는 감출 수 없다. 00동 XX아파트 또는 몇 평형 아파트라는 정보만 있으면 그 사람이 사는 집이 그려질 정도다.
시에서는 뉴타운 개발을 앞두고 일방향의 주거문화를 걱정해 주거유형을 다양화하는 사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서울 논현동과 홍대거리에는 단독주택을 개보수, 소호로 사용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중심지는 아파트에게 내어준 채 주거 만족을 위해 외곽으로 스스로 찾아 나서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건축가 김희준 선생은 도심을 벗어난 삼청동 골짜기에 작은 소호 공간을 계획했다.
번잡한 도로를 끼고 요식업과 상점들이 번성하는 삼청동과는 거리가 먼,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다. 대지가 8평이니 공간이 클 리가 없다. 1층에 4명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2층에 주거 기능이 들어간다. 소호 주택은 부정형의 사다리꼴 땅에 계획됐다. 마을에 있는 돌 축대와 개울사이에 위치하며, 땅모양에서 파생되는 기존 건물의 외곽선을 그대로 살려 중층으로 계획했다. 외피는 푸르게 변해가는 부식 동판을 사용하여 비오는 날 돋아나는 돌 축대의 파릇파릇한 이끼와 조화되도록 했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집의 의미와 공간에 대한 가치관을 살펴보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주거 유형의 시대가 오고 있다.
사진 출처
63.02° 소호 : http://www.archdaily.com
삼청동 작업실 : 김희준, 스튜디오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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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painter_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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