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의 미국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5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의존도가 올라가면서 전체 사용량의 40%를 미국산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의 결과다. 앞으로도 미국 의존도는 더 올라갈 전망이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를 무기화 할 경우 유럽의 에너지 수급 불안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유럽연합통계국(ESTAT)이 2024년 4분기 기준으로 집계한 유럽연합(EU)의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비중은 36%로 가장 높았다. 2021년까지 7%에 불과했던 미국산 천연가스 비중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5배 이상 치솟았다. 반면 전쟁 이전에는 50%에 이르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은 22%까지 떨어졌다.
대러제재가 더욱 장기화 될 경우, 유럽의 미국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5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에너지경제분석연구소(IEEF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대러제재 강화로 유럽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중은 10%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 미국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50% 이상, 액화천연가스(LNG)는 80%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유럽 안팎에서는 미국산 천연가스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에는 유럽국가들이 미국산 천연가스의 수입 증가를 환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의 천연가스 생산량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미국이 유럽의 에너지 시장을 독점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최근 한파 피해로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가면서 유럽의 가스 수급불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2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미국 천연가스 2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MMBtu(미국 가스 열량 단위)당 6.80달러를 기록해 2022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파 피해로 미국 내 천연가스 생산량도 최대 1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EU는 천연가스 수급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CNBC는 "천연가스 수출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다. 중동 물량은 아시아에 대부분 수출되고 있어 유럽이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쉽지 않다"며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이 앞으로 생산량을 늘린다고 하지만, 2030년부터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 당장 미국 수입비중을 줄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천연가스를 외교적 무기로 사용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면 미국의 외교적 압박을 쉽게 이겨낼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미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익명을 요구한 EU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에 대한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는 잠재적으로 높은 위험성의 지정학적 의존관계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며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 시도를 하거나 군사적 침공을 계획할 경우, 그가 유럽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단할 가능성도 고려해야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