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벤처 4대 강국, 멍석 깔기 전에 빗장 풀기부터

장밋및 비전에도 규제에 막혀
범정부 공조로 낡은 인식 걷어야

재계에서 셋째 가는 대들보. 우리 벤처기업들의 위상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3만8000여개 기업으로 이뤄진 'K-벤처군단'의 지난해 매출 합계가 236조원으로 삼성(332조원)·현대자동차(280조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최근 집계 결과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들이 고용한 근로자는 83만명으로 4대그룹 전체 상시근로자(75만명)보다도 많다.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한 곳곳의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모여 경제와 산업의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벤처의 역동성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글로벌 벤처 4대 강국'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놨다. 2030년까지 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 육성, 연간 40조원 투자 달성 등 파격적인 실행 계획도 제시했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마중물을 쏟아부어 신성장의 동력을 더 가열차게 확보하겠다는 의지는 다행스럽다. 문제는 이러한 장밋빛 비전이 얽히고설킨 규제에 여전히 가로막혀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연료를 채워도 규제라는 이물질이 엔진에 박혀 있으면 차는 나아갈 수 없다. 중기부와 보건복지부가 대립하며 요사이 논란이 된 일명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원천 차단하는 이 법안은 벤처 생태계에 '기존 질서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혁신하라'는 서슬 퍼런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간다. 동시에 우리 규제 환경이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영향력에 기반한 이익단체의 입김을 여과시키지 못했던 타다 사태의 재현이 될 수도 있다. 어디 이들 사례뿐이겠는가. 변호사·세무사와 소비자를 잇는 로톡·삼쩜삼처럼 기득권 직역 세력의 위력과 규제의 덫에 걸려들고,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는 낡은 규정의 허들에 가로막힌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 벤처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충분히 평가할 일이다. 대내외 악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엔진을 쉼 없이 가동시킨 기업인들의 노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구조가 고도화된 선진국일수록 산업의 저변에서 벤처·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들의 역할과 기능이 더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벌써 이 정도야?' 하며 놀라기보다는 '왜 아직도 이 정도지?'라는 의문을 품는 게 자연스럽다. '재계 3위'라는 이들의 위상은 분명 우리 경제의 희망을 상징한다. 동시에 낡은 규제로 앞길을 막아선 안 된다는 엄중한 신호이기도 하다. 규제의 울타리를 과감히 허물어 이들이 2위로, 나아가 1위로 도약하게 만드는 범정부적 공조가 그래서 시급하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