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기자
강원도 속초시가 단행한 5급 사무관 승진 인사를 둘러싸고 성 비위 폭로와 공정성 시비가 맞물리면서 공직사회가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속초시지부 홈페이지 캡처.
속초시청 전경.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속초시지부(이하 노조)는 이번 인사를 '인사 시스템의 붕괴'로 규정하며 전면 재심의를 요구하고 있어 시와 노조 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은 지난 18일 발표된 사무관 승진 의결 결과였다. 승진 대상자가 공개된 직후 노조 홈페이지에는 과거 2012년경 승진 대상자 A 팀장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글이 올라와 파문을 일으켰다.
피해자는 게시글을 통해 "성범죄자가 사무관이 되어 조직을 이끄는 세상을 용납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해당 글은 순식간에 수백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직 내부의 공분을 샀고, 속초시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지난 22일 A 팀장을 직위 해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병선 속초시장은 지난 22일 국장급 2명, 과장급 4명, 팀장급 4명 등 총 10명이 대상이었으며, 행정국장·자치행정과장·인사팀장 등 인사 실무 라인 전원이 교체됐다. 이 전보 인사는 당초 내년 1월로 예정돼 있었으나 시는 일정을 앞당겨 조치를 시행했다.
속초시는 "조직 기강을 바로잡고 인적 쇄신을 꾀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으나 노조의 반응은 싸늘하다. 실무자 교체만으로는 승진 결과에 포함된 부적격자를 걸러내지 못한 근본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공노 속초시지부는 이번 사태가 예견된 '인사 참사'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직원들의 우려를 인사위원회에 전달했지만, 어떠한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채 인사가 강행됐다"며 "이는 인사 규칙을 형해화하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다면평가는 인사규칙상 최소한의 검증 절차임에도 이번 승진에서는 시행조차 되지 않았다"며 "불명확하고 일관성 없는 기준이 오히려 조직 내 갈등과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노 속초시지부는 이번 사안을 '공정성과 신뢰의 위기'로 규정하고 △문제 인사에 대한 재심의 △다면평가 제도의 즉각적 시행 △일관되고 투명한 승진 기준 수립 △시민과 조직을 위한 공정한 인사 운영 원칙 확립 등을 요구했다. 속초시는 전공노 속초시지부로부터 입장을 전달받은 뒤 관련 내용에 대한 검토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속초시 한 시민은 "청렴과 도덕성이 최우선이어야 할 공무원 조직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깊은 실망을 느낀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성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는 경찰로 넘어간 상태다. 수사 결과에 따라 승진 취소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이미 실추된 행정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