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머라이어 캐리. AP연합뉴스
음원 차트가 다시 '캐럴의 습격'에 점령당했다. '성탄절의 상징' 머라이어 캐리가 빌보드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쓴 가운데, 지난해 정국 혼란으로 위축됐던 국내 음악 소비 심리도 예년의 활기를 되찾으며 캐럴의 역주행 속도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성탄 시즌마다 돌아오는 '캐럴 연금'의 위력이 대단하다. 미국 빌보드는 22일(현지시간) 머라이어 캐리의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통산 1위 기간이 100주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1958년 차트 출범 이후 67년 만에 나온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4년 발매된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21주간 1위를 수성하며 이룬 성과다. 리한나(60주), 비틀즈(59주) 등을 가뿐히 제쳤다.
올해 국내 차트는 겨울 분위기의 곡이 인기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캐럴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2007)' 등이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거리의 배경음악이 되었던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해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광장에서 합창했던 곡들이 역주행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올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일찌감치 달아올랐다.
24일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에 따르면 머라이어 캐리의 대표곡은 이달 초 70위권에서 현재 9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K캐럴의 스테디셀러인 엑소(EXO)의 '첫눈(2013)'은 멜론 '톱 100' 2위까지 급등하며 '캐리 언니'의 공세를 막아냈다. 3주 만에 110계단 이상 수직 상승한 이 곡은 이제 국내 팬들에게 성탄절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첫눈'을 부른 엑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얀 그리움' 리메이크 곡을 발표한 프로미스나인. 어센드 제공
국내외를 막론하고 '클래식'은 인기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산타 텔 미(Santa Tell Me)'와 아이유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2010)'는 각각 멜론 주간 차트 중상위권에 안착하며 스테디셀러의 저력을 보였다. 올해 새로 발매된 곡 중에서는 프로미스나인이 김민종의 원곡을 24년 만에 리메이크한 '하얀 그리움'이 차트 20위권 내에 진입했다.
기성곡들의 독주 속에 신곡 발매가 줄어드는 '캐럴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다. 올해 신규 캐럴 발매는 2년 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 이색 협업 콘텐츠다. 구글 인공지능(AI) 제미나이와 배우 변우석이 함께한 '더 크리스마스 송'은 아이브 장원영, 에스파 카리나 등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음악업계 관계자는 "K팝 곡은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 12월에는 팝스타들의 캐럴이 차트 정상을 단단히 지키고 있다"며 "지난해 사회적 이슈에 밀려 위축됐던 국내 캐럴 소비가 올해 제자리를 찾으면서 연말 음악 시장이 비로소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