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A형까지…연말 혈액 수급난

학생 헌혈 급감에 고령화
혈액 비축분 2.3일분까지 ↓

최근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김모씨(45)는 병원으로부터 Rh+ A형 혈액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혈액형조차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정을 설명하며 지정 헌혈을 요청했다"며 "수술을 앞두고 피가 모자라 잘못될까 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헌혈 관련 사진. 기사와는 직접적인 연관 없음.

최근 저출산·고령화와 젊은 층의 헌혈 감소가 맞물리며 혈액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연말은 방학으로 인한 학생 단체헌혈 감소, 한파와 감염병 유행까지 겹쳐 연중 혈액 사정이 가장 나쁜 시기로 꼽힌다.

24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상황 전광판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기준 전국 권역별 혈액 보유 일수는 3.3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수혈용 예비 혈액은 2.3일분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 15일 같은 시각(3.5일·2.7일)보다 더 악화된 수치다. 통상 혈액 보유 일수가 5일 이상이어야 '적정'으로 분류되며, 3일 미만이면 '주의' 단계다. 현재 비축분은 사흘도 버티기 힘든 수준이라는 의미다.

혈액 부족이 이어지면서 환자 보호자가 직접 헌혈자를 구하러 뛰는 '지정 헌혈'도 일상이 됐다. 서울의 한 병원 관계자는 "혈소판 부족으로 위급 환자의 수술이 미뤄질 뻔한 적도 있다"며 "병원에서 혈액을 구하지 못해 환자 가족에게 직접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의료진도 난감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수급난의 핵심 원인은 젊은 층의 헌혈 급감이다. 지난해 10·20대 헌혈자 수는 약 156만명으로 2015년(약 230만명) 대비 32% 급감했다.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에 입시 제도 변화가 기름을 부었다. 2024학년도 대입부터 개인 봉사활동 실적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헌혈 유인이 사라진 탓이다. 실제 지난해 전체 헌혈 실인원(중복 제외)은 126만4525명에 그쳐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5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최근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헌혈 가능 인구가 감소하면서 '헌혈 정년 69세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며 "헌혈 연령 제한 기준이 완화되면 건강한 중장년층의 헌혈 참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부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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