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과 종편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대조를 이룬다. 그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공개를 제한해온 것을 나무랐다. "국민을…선전·선동에 넘어가는 존재로 취급하는 거 아니냐." "북한 실상을 정확히 알려서 '저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 왜 막냐."
반면, 종편을 성토했다. "종편, 그게 방송인지, 편파 유튜브인지 의심이 드는 경우가 꽤 있다." 방송의 편향성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가 평가해 왔다. 이 대통령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방미심위와 관련해 "따로 노는 독립기관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지휘통제를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종편을 편파 유튜브로 의심하면서 종편을 심의하는 기관에 대한 지휘통제를 언급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종편처럼 언론 형태를 취한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하시었다"(2020년 11월 1일 1면 머리기사) 같은 제목이 태반인 노동신문은 편파성의 끝판왕이다. 종편의 편파성은 그 발끝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노동신문을 향해선 "공개"를, 종편을 향해선 "지휘통제"를 언급하니 '이중잣대?'라는 의문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편파적임에도 국민정보주권을 이유로 개방하고 종편은 편파적이기에 강하게 규제한다면, 이념 성향과 정치적 목적에 따른 선택적 정의로 비칠 수 있다. 노동신문 개방이 '체제 자신감'의 산물이라면 종편의 비판도 '민주주의적 자신감'으로 포용해야 마땅하다.
물론, 대통령의 노동신문·종편 발언은 이중잣대가 아닐 수도 있다. 노동신문은 우리 국민에게 언론이라기보다는 북한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정보의 원천으로 기능하기에 차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종편은 편향성을 줄여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하는 당사자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우려가 가시는 건 아니다. 노동신문은 단순히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 우리를 핵무기로 위협하는 세력의 프로파간다 수단이다. 우리 국민의 1%, 50만 명만 동조해도 문제가 된다. 노동신문의 기사가 SNS에 올라 수천 개의 찬성 댓글이 달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의 논리는 시민의 판단력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가정한다. 북한의 조악한 선전(노동신문)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수용 능력을 신뢰하면서 내부 언론 비판(종편)에 대해선 국민을 선동에 취약한 보호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국민의 역량을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재단하는 것처럼 비친다.
무엇보다, '종편=편파 유튜브' 등식은 현 정부 출범 후 객관적 지표로 입증된 적이 거의 없다. 보수성향 종편이 진보성향 공중파보다 더 편파적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한국 언론은 한국 사회의 갈등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한 외신 보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 방송들의 편향성은, 있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솔직하게 반영한 현상일 뿐이다.
언론자유국에서 방송심의기구는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생명이다. 방미심위를 향한 지휘통제는 방송 자율성의 퇴행이다. "방미심위, 대통령 추궁에 독립기구 외피조차 무색" 한국기자협회보도 이런 기사로 우려했다. 역대 정권과 달리, 방미통위가 방미심위를 지휘통제한다면, 대통령이 방미심위의 보고를 받는다면, 방미통위·방미심위는 방송의 중립성 심의에서 손을 떼는 게 맞다. 종편 같은 민영방송의 자율 심의는 선진국에선 대세다. 노동신문과 종편이라는 두 아이템은 언론 자유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