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매입임대' 잡으려다 '공급 절벽' 부추긴다…매입임대 전수조사 딜레마[부동산AtoZ]

"1억 집을 1.2억에 판다는 소문 들여다보라" 지시
경실련 "민간 업자 거품 반영된 구조, 전면 폐지해야"
LH "감평 방식 문제 없어…최근엔 단가 낮아 사업자 이탈 중"
조사 장기화 시 청년·신혼부부 주거 대책 차질 생길수도
의문 해소와 공급 확대, 두 가지 과제 안게 된 국토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의 신축 주택을 고가에 사들여 매입임대사업을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에 정부가 전수조사에 나선다. 매입가격의 적정성을 뜯어보기 전 준비 작업이다. 이 같은 조치는 민간 사업자의 사업 참여 의지를 꺾을 수 있어 도심 주택 공급난을 가중할 수 있다. 올해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서 매입임대까지 줄어들면 서민의 주거 불안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청년매입임대주택. LH.

23일 관가에 따르면 국토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LH 매입임대 사업 전반에 대한 실태 파악과 가격 산정 구조 점검을 위한 조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 조사 범위와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매입 가격 문제를 직접 언급한 만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사안"이라며 "전수조사 필요성에도 공감대가 있으나, 구체적인 조사 방식은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신축 매입임대는 민간 사업자가 다세대·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주택을 신축해 LH에 매각하고, 이를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향후 5년간 수도권에서만 착공 기준 14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이 정부 목표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 정비사업 외에는 신축 주택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전체 주택 공급 계획(135만 가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최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건설사들이 1억원짜리 집을 지어 LH에 임대주택용으로 1억2000만원씩 받아 비싸게 판다는 소문이 있다"며 "LH를 호구로 삼는 장사가 있는지 광범위하게 들여다보라"고 지시했다. 그간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매입임대 가격 부풀리기' 논란이 공식 정책 현안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매입임대 사업이 민간 사업자의 토지비·건축비 거품을 그대로 반영하는 구조라며 제도 전면 폐지를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최근 4년간 LH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서울·경기 지역에서 매입임대에 투입한 금액은 16조7000억원에 달한다. 경실련 관계자는 "매입임대로 사들인 오피스텔 1실의 가격이 인근 지역 공공 아파트 2가구 가격 수준에 달하는 사례도 있다"며 "최소 10%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로 혈세 낭비와 집값 자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LH와 감정평가 업계는 이런 지적에 반발하고 있다. 이미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시절, 같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감정평가 방식을 개편했다는 것이다. 매입 가격은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추천을 받은 외부 감정평가사가 인근 거래 사례와 건축 원가 등을 종합해 산정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지금 구조에서는 LH가 임의로 매입가를 높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감정평가사협회 관계자도 "최근 원가 검증이 강화돼 과거와 같은 고가 매입 논란이 재현될 구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수익성이 떨어져 민간 사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 LH의 설명이다. LH는 지난해 매입임대 목표 물량 5만 가구 가운데 3만8531가구만 확보했다. 올해도 목표 미달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기에 이번 전수조사가 시작되면 매입임대 시장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양측의 갈등이 깊어져 조사가 장기화할 경우 사업 동력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주택 공급 부족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 매입임대는 도심 내 청년·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한 몇 안 되는 공급책이라는 점에서, 서민에게 피해가 가중될 전망이다. 반면 고가 매입 논란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더 약해질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입 가격 적정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면서도 주택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사 범위와 방식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라며 "조사 결과가 공급 정책 전반을 흔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부동산부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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