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잭팟' 국내선 '부도 공포'…건설판 '살아남은 게 기적'[부동산AtoZ]

2025 건설·부동산 결산

올해 건설업계는 지난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산업재해 근절 드라이브와 유동성 고갈이라는 이중고에 갇혔다.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는 사이 기업들은 법정관리와 신용등급 강등의 공포 속에서 현금을 확보하느라 1년을 보냈다. 국내에선 부도 공포, 해외에선 원전발 역대급 성과로 극과 극이 공존한 2025년 건설업계를 5대 이슈로 결산한다.

PF 위기와 건설업 구조조정

부동산 호황기에 의존했던 기형적인 사업 구조는 불황을 만나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는 해를 넘겨도 해소되지 않았다. 브릿지론의 본PF 전환 실패는 시공사 채무 인수로 직결됐고, 보증 규모가 큰 대형사마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알짜 부지 매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금융당국은 PF 연착륙을 위한 한시 규제완화 조치 11건 가운데 10건의 종료 시점을 6월 말에서 12월 말로 연장했다. 급격한 자금 회수를 막고 사업장 정리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조치였다. 겨냥한 곳은 PF 사업장과 이를 떠받친 금융권과 시공사다. 시장의 불안이 실물 현장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게 1차 목표였다.

기초체력이 바닥난 중견 건설사 줄도산은 현실이 됐다. 신동아건설이 연초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가 10월 종결된 사례는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한다. 시공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자금 경색 하나를 넘지 못해 법정관리로 내몰렸고, 이는 하도급 업체의 연쇄 부실이라는 뇌관을 건드렸다. 지난 3분기까지 폐업한 종합·전문건설사는 2301곳. 2년 연속 3000곳 퇴출이 기정사실화됐다.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건설사 신용등급과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떨어진 신용도는 곧바로 회사채 발행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래 일감인 수주와 현재 일감인 기성도 동시에 꺾였다. 지난 10월 국내 건설 수주액은 9조8000억원으로 5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건설기성액은 10조761억원으로 지난해 5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18개월 연속 줄었다. 역대 최장기간 감소세다.

'쉬쉬'하던 죽음, 이제는 '경영 참사'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업안전은 기업 존폐를 가르는 '경영 리스크'로 부상했다. 그동안 통계 뒤에 숨어 관행처럼 여겨지던 건설 현장의 사망 사고가 이재명 대통령의 무관용 원칙 선언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반복되는 산재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했고, 사망사고 반복 발생 건설사에 대해서는 "건설 면허 취소까지 검토하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어 모든 산재 사망 사고를 대통령실 직보 체계로 격상시켰다. 과거라면 단신 처리되거나 묻혔을 사고들이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전 국민의 감시 대상이 됐다.

건설사들은 "사고 나면 망한다"는 공포 속에 안전 인력 확충과 점검 체계 강화에 즉각 착수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대표가 교체됐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자체적으로 신규 수주 활동을 중단했다. 사망사고가 최고경영자(CEO) 교체와 수주 제한, 기업 평판 추락으로 직결되는 '경영 참사'가 된 것이다.

다만 정부의 고강도 압박으로 현장 긴장감은 높아졌으나, 안전 불감증을 단번에 도려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반기 들어 속도보다 안전을 앞세우는 현장이 늘었지만 건설 현장 사망사고는 연말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 우선 기조를 실질적인 사망사고 감소로 이어가는 일은 2026년 과제로 남게 됐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역대 최고'…양극화 심화

건설업이 역대급 불황에 빠진 사이 서울 아파트값은 역대급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2주차 기준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8.1%다.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연간 기준 최고치로, 문재인 정부 시절 기록한 종전 최고(8.0%)를 넘어섰다.

이는 2~3년 전 착공 감소로 인한 물리적 '공급 부족'이 예견된 상황에서 새 정부가 내놓은 6·27 대책(대출 규제)과 10·15 대책(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등)이 도리어 매물 잠김 현상을 초래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공포 심리가 실수요자를 '패닉 바잉'으로 내몰았다. 공급 부족 속에 한강 벨트로 수요가 쏠리며 양극화가 심화했다.

서울 집값이 뛰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도 벌어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값은 전년 동월 대비 1.9% 오른 반면, 지방은 1.7% 하락했다.

정부는 규제로 가격을 잡겠다고 했지만 서울 집값 상승세를 꺾지 못했고,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진 채 2025년 부동산 시장은 '역대급 불장'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해외서 숨통, 체코 원전 26조로 정점

체코 두코바니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국내 건설 경기는 바닥을 찍었지만 해외에선 분위기가 달랐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 해외건설 수주액은 446억957만달러(약 66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아시아로 시장을 다변화한 전략이 통했다.

정점은 체코 원전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코리아'가 6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건설사업 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액은 187억달러(26조원). 역대 해외건설 수주 2위 규모다. 프랑스가 가처분 신청까지 내며 방해 공작을 벌였지만 결국 '팀코리아'가 이겼다.

연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일부 공사와 카타르 LNG 플랜트 등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예정돼 있어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당초 목표인 500억달러 달성이 유력하다. 정부와 민간이 결집한 '팀코리아' 전략이 해외에서 빛을 본 한 해였다.

프로젝트 리츠, 개발 금융의 판을 바꾸다

PF 시장이 경색되고 규제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부동산개발회사들에 새로운 자금 조달 경로가 열렸다. 지난달 28일 프로젝트 리츠 관련 법령이 시행되면서 개발 초기 단계부터 리츠를 통한 자본 유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설립요건 완화, 현물출자 시 과세이연 등 혜택도 담겼다.

프로젝트 리츠는 '모래성'에 비유되던 국내 개발 사업의 체질을 바꿀 기회로 평가받는다.

기존에는 리츠를 준공 후에만 활용할 수 있어 개발 단계에서는 자본금이 적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세워 고금리 대출(PF)에 의존해야 했다. 차입 제한이 없는 PFV는 불과 2~3%의 자기자본만으로 고위험 사업을 벌여 부실에 취약했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선으로 착공 전부터 리츠를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지며 재무 구조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됐다.

프로젝트 리츠는 차입 규모가 자기자본의 2배(주주총회 결의 시 최대 10배) 이내로 엄격히 제한된다. 대출을 받으려면 그만큼 자본금을 더 채워 넣어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재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투자 확대 유인책 중 하나인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이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논의에서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여야가 '신속 검토'를 조건으로 추후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만큼 기획재정부의 세수 영향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별도 법안이 발의될 전망이다.

건설부동산부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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