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시장의 예측대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연말 '엔 캐리 청산'에 대한 공포가 커진 가운데 결국 금리인상 결단을 내린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인물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일 우에다 총재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책금리를 현행 0.5%에서 0.75% 정도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새 정책금리는 오는 22일부터 적용된다. 이번 금리 인상은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인데, 0.75%는 1995년 8월 이후 3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번 금리인상은 엔화 약세로 지속되던 고물가, 그리고 미일 금리차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게 시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19일 금리인상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일본은행.
우에다 총재는 금리인상 결정 배경과 관련해 "내년은 기업들이 최저임금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회의에서 다수 위원이 엔저가 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라고도 밝혔다. 실제로 이번 금리 인상은 9명의 정책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에다 총재의 이같은 금리인상 결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게 주요 언론의 분석이다. 마이니치는 금리 인상 발표에 대해 "BOJ는 미국 관세 인상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 타격이 당초 예상보다 작아, 기업들이 내년에 충분한 임금인상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여기에 엔저로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판단도 금리인상 결정을 뒷받침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이번 인상으로 물가 안정 목표 실현을 위한 정책의 정확도가 높아졌다"며 "금융 정상화를 한층 더 진행하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정책결정회의 당일 오전부터 주요 언론은 BOJ가 금리인상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결과 발표를 앞두고 닛케이 소속 금융 데이터 회사 퀵은 "이미 주요 조간들이 금리인상과 관련해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BOJ로부터 사전에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니혼테레비(닛테레)는 금리 인상 단행이 확실시된다며 "당장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급격하게 진행된 엔화 약세가 지금의 고물가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닛테레는 "현재 미국의 정책금리가 3.50~3.75%인데, 일본은 0.5%로 미일 금리차가 상당히 벌어졌다"며 "BOJ 관계자가 지금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을 정도로 절박하다"고 전했다.
금리인상은 예견된 수순이었으나, 그 시기는 시장의 예상보다 빨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초 일본이 금리 인상을 한 차례 단행한 이후, 노무라증권 등 일본 증권사들은 내년 1월에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우에다 총재는 지난 1일 나고야에서 열린 경제계 대표자 간담회에 참석, 이번 금융 정책 결정 회의 안건과 관련해서 "금리 인상의 시비에 대해 적절히 판단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금리 인상을 예고한 것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일제히 금리 인상 예상 시기를 이달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는 나아가 "정책금리를 인상한다고 해도 완화적인 금융환경 속에서의 조정일 뿐"이라며 "지금까지의 정부와 BOJ의 노력을 최종적으로 성공시키는 연장선"이라고도 발언했다. 사실상 이번 금리 인상이 새로 출범한 다카이치 정권 기조와도 큰 이견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지난달 18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금리 인상과 관련한 논의를 나눴다. ANN.
사실 정책금리 인상은 우에다 총재의 사명이기도 하다. 1951년생 우에다 총재는 BOJ의 사상 첫 학자 출신 총재다. 그간 BOJ 총재는 중앙은행 내부인이나 우리나라 기획재정부 격인 재무성 출신 인사가 임명되는 게 관례였으나, 그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잠깐 BOJ 심의위원을 맡고 이후 다시 학계에서 활동했다.
아마미야 당시 부총재는 우에다 총재가 BOJ 심의위원을 맡았을 시기, 그를 굉장히 눈여겨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이디어맨이었기 때문이다. 우에다 총재가 금리 인상을 처음으로 단행한 작년만 하더라도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은 2%를 크게 선회했고, 미국과의 금리 차는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BOJ는 금리 인상을 하지 않고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오랫동안 계속된 엔저의 부작용을 해결할 시기가 도래하자, 아마미야 당시 부총재는 우에다 총재가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그를 밀었다고 알려졌다. BOJ는 우에다 총재 내정 후 금융정책 결정 회의에서 대규모 완화 정책을 해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받은 소명은 '금리 인상과 이에 대한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우에다 총재는 앞으로도 금리 인상 방향성 자체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는 기자회견에서 중립금리와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 언급은 피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중립금리에 대한 질문에 "추정치에는 상당한 편차가 있어 구체적인 수치를 사전에 특정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현재의 정책금리는 중립금리 추정치 하단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아직 현 금리 수준이 중립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지금까지의 단계적 금리 인상으로 강한 긴축효과가 나타났다고 보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일단 인상 속도와 시점은 시장과 금융 여건을 보며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에다 총재는 자산시장과 신용 흐름을 점검하면서 단계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노무라 증권은 우에다 총재가 금리 인상 기조를 마냥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정책금리가 0.75% 수준에 도달한 이후,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2% 아래로 둔화하는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에 내년 하반기 전후로 추가 금리 인상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 노무라 증권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