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남극 최대 황제펭귄 번식지 가운데 하나인 로스해 쿨먼섬(Coulman Island)에서 황제펭귄 새끼 개체 수가 1년 새 약 70%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빙산이 번식지 출입로를 막으면서 먹이 공급이 끊긴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극지연구소는 남극 로스해 쿨먼섬에서 관측된 황제펭귄 새끼 수가 지난해 약 2만1000마리에서 올해 약 6700마리로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인근 다른 번식지에서는 유사한 현상이 확인되지 않아 특정 환경 요인이 작용한 이례적인 사례로 분석됐다.
쿨먼섬 황제펭귄 번식지와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새끼 펭귄들. 극지연구소 제공
연구진은 지난달 현장 조사에서 길이 약 14㎞, 면적이 축구장 약 5000개에 달하는 거대 빙산이 번식지와 바다를 잇는 주요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위성 자료 분석 결과, 이 빙산은 지난 3월 난센 빙붕에서 분리돼 북상한 뒤 7월 말쯤 번식지 입구를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제펭귄은 매년 6월 산란 후 암컷이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하고 수컷이 알을 품는다. 이후 2~3개월 뒤 새끼가 부화할 무렵 암컷이 돌아와 먹이를 공급하는데, 이번에는 빙산이 이동 경로를 막으면서 다수의 새끼가 굶주림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드론 촬영 영상에서는 빙산 절벽에 막혀 번식지로 돌아가지 못한 수십~수백 마리의 성체와 장기간 체류를 보여주는 배설 흔적도 확인됐다.
2024~25년 11월 쿨먼섬 황제펭귄 서식지 비교. 2025년도에는 2024년도와 비교했을 때, 황제펭귄 배설물인 구아노의 흔적(왼쪽 사진 갈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음. 극지연구소 제공
조사를 총괄한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는 "살아남은 약 30%의 새끼는 어미가 빙산으로 막히지 않은 다른 경로를 통해 가져온 먹이를 공급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빙산이 다음 번식기 전까지 사라지면 회복 가능성은 있지만, 장기간 정체될 경우 황제펭귄이 다른 번식지로 이동하는 등 장기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성 자료를 분석한 박진구 극지연구소 박사는 "난센 빙붕에서 분리된 빙산의 이동 경로가 다른 주요 황제펭귄 서식지 인근도 지나고 있다"며 "빙붕 붕괴가 황제펭귄을 비롯한 남극 생태계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우려했다.
쿨먼섬 황제펭귄 서식지와 거대빙산 위치(왼쪽), 난센 빙붕에서 떨어져나온 빙산의 이동 경로(오른쪽). 극지연구소 제공
연구팀은 이번 사례를 내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등 국제기구에 공식 보고할 계획이다. 로스해는 백만 마리 이상의 아델리펭귄과 수만 마리의 황제펭귄을 비롯해 고래, 물범, 바닷새, 크릴 등이 서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보호구역이다.
극지연구소는 2017년부터 해양수산부 연구개발(R&D) 사업인 '로스해 해양보호구역의 보존조치 이행에 따른 생태계 변화 연구'를 수행하며, 현장 조사와 위성·항공 등 원격탐사 기법을 결합해 주요 종의 개체수 변화와 환경 요인을 장기 분석하고 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가 남극 생태계에 어떤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내년 번식기까지 위성 관측과 현장 조사를 강화하고, 기후변화가 남극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