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선기자
식품업계에서 '폐기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처리 비용과 규제 부담의 상징이던 부산물이 이제는 새로운 수익원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의 활동을 넘어 원가 구조를 개선하고 신사업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식품산업은 원료 가공 과정에서 껍질, 찌꺼기, 잔여물 등 부산물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업종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이를 사료로 넘기거나 폐기물로 분류해 외부 업체에 위탁 처리해왔다. 최근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부산물을 다시 원료로 쓰거나 제품·소재·에너지원으로 전환해 비용 절감과 매출 창출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CJ제일제당의 바삭칩. CJ제일제당 제공.
19일 한국식품산업협회가 최근 발간한 자원순환 사례집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식품 부산물을 활용한 업사이클링을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회사는 2021년 10월 푸드 업사이클링 스낵 사업화를 승인한 후 2022년 4월 사내벤처 프로그램 '이노백(inno100)'을 통해 첫 제품인 '익사이클(Excycle) 바삭칩'을 출시했다. 햇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깨진 쌀을 활용한 이 제품은 튀기지 않은 공정으로 바삭한 식감을 구현하고, 달걀 1개 분량의 단백질을 담은 고단백 스낵으로 차별화했다. 출시 10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만봉을 기록하며 국내 시장에서 반응을 얻었고, 2023년 12월부터 미국·말레이시아·홍콩 등으로 수출을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호주 코스트코에도 입점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성과 건강을 중시하는 흐름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업사이클링을 환경 차원의 선택이 아니라 사업 기회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CJ제일제당은 2021년 업사이클링 푸드 스타트업 '리하베스트'에 투자해 제분 공정에서 발생하는 밀 속껍질을 활용한 대체 밀가루 '리너지 가루'를 개발했고, 이는 리하베스트의 건강빵 브랜드 '리베이크' 제품에 적용됐다. 이 관계자는 "식품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원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기술적·경제적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업사이클링을 통해 식품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지속해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원F&B는 참치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식품 소재로 전환하며 자원 순환형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통조림 참치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자숙액은 과거 대부분 폐수로 처리되며 비용 부담 요인이었다. 동원F&B는 자숙액에 오메가3, 칼슘, 안세린 등 유용 성분과 풍부한 맛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를 참치 농축액과 참치액(소스) 등으로 가공하고 있다.
동원참치액. 동원F&B 제공.
동원F&B 관계자는 "참치의 30~40%만 통조림이나 횟감으로 활용되고 나머지는 부산물로 버려진다는 점에서 출발했다"며 "자숙액은 원료 대비 약 15%가 발생하지만 대부분 폐기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숙액을 가열·농축하는 공정을 표준화해 1997년부터 농축액을 상품화했고, 지난해부터는 이를 활용한 참치액까지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창원공장에서 발생하는 참치 자숙액은 연간 약 700t으로, 이를 자원화하면서 폐수 처리량을 100t 이상 줄이고 폐기물 처리 비용도 크게 절감했다.
농업 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인삼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차광막 문제 해결에 나섰다. 분리배출이 어렵고 처리 비용 부담이 커 방치·불법 소각되던 폐차광막을 농가와 협력해 수거한 뒤, 재활용업체를 통해 인삼 지주목 등으로 업사이클링했다. 수거 비용을 지원하고 인삼농업협동조합과 연계해 경작인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약 793t의 영농 폐기물을 처리해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거뒀고, 농가의 폐기물 처리 비용 부담도 줄었다. 회사 측은 "앞으로도 농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산물을 자원화하는 모델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진선 한국식품산업협회장은 "자원순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식품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라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원 절감과 순환 경제 전환에 나서며 산업 표준을 만들어온 것이 자원순환 정책과 산업 전반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