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에스알 통합하면 KTX 요금 10% 인하?…'조삼모사' 세금 청구서'

통합으로 인한 중복 비용 절감
좌석 확대 통한 요금 인하 주장
작년 5000억 당기순손실 예상
누적 부채 21조원 더 키울 듯
"적자 폭 커지면 혜택 먼저 폐지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에 갈것"

정부가 코레일과 에스알(SR)의 통합을 추진하는 가운데 코레일이 통합 효과로 제시한 'KTX 요금 10% 인하'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코레일은 통합으로 인한 중복 비용 절감과 좌석 공급 확대를 통해 요금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재무 구조를 분석하면 오히려 적자를 심화시켜 국민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에스알 노동조합은 정부가 내세운 '좌석 1만6000석 증가'의 셈법 자체가 꼼수라고 주장했다. 에스알 노조 관계자는 12일 "코레일이 주장하는 좌석 증가는 수송 능력이 큰 KTX-1(20량)을 수서역에 투입해 2만4000석을 늘리는 대신 기존 서울역의 가용 열차를 빼 오면서 서울 쪽 좌석 8000석을 줄이는 방식"이라며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터무니없는 계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 평택~오송 구간의 선로 용량이 이미 포화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열차 정비 역량 확충 없이는 수서발 열차를 늘리는 만큼 서울발 열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도 최근 브리핑에서 "단기간에는 수서발 열차가 늘어나는 만큼 서울발 좌석이 감소하는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오락가락 코레일 요금 정책

코레일의 오락가락하는 요금 정책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코레일은 지난 3월 경영 수지 악화를 이유로 KTX 요금 17%, 일반 철도 10% 인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 들어 통합 논의가 본격화되자 입장을 선회해 통합 시 요금을 10% 인하할 수 있다는 내부 검토 의견을 내놓았다. 에스알 노조 측은 "17%를 올려도 모자랄 판에 10%를 깎아주면 체감상 27%의 재정 공백이 생기는 셈"이라며 "통합 직후엔 이벤트성으로 요금을 내릴지 몰라도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적자 폭탄이 되어 대규모 요금 인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무리한 요금 인하가 코레일의 부실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에스알 노조 분석에 따르면 코레일은 2024년 기준 약 5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이 예상되는데, 여기서 KTX 운임을 10% 인하할 경우 연간 약 2500억원의 매출이 추가로 증발한다. 현재 에스알의 연간 매출 중 45%인 약 3600억원이 고속철도 건설 부채 상환에 쓰이고, 코레일에 지급하는 위탁비 등 고정비만 2000억원에 달하는 구조를 고려할 때, 통합 후 요금 인하는 코레일의 누적 부채 21조원을 더욱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무 상태가 악화하면 그 피해는 승객 서비스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에스알 노조는 "통합 후 적자 폭이 커지면 마일리지 혜택이나 각종 할인 제도가 가장 먼저 폐지될 것"이라며 "향후 6조원 규모가 필요한 노후 KTX-1 차량 교체 비용 역시 코레일 자체 여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통합의 근거로 든 '406억원 중복 비용 절감' 역시 현실과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말하는 중복 비용 안에는 에스알 직원들의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다고 약속하면서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는 것이 에스알 측 주장이다.

실질적인 좌석난 해소는 통합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진행 중이다. 에스알은 이미 자체 예산을 투입해 현대로템에 신규 고속열차(EMU-320) 14편성을 발주한 상태다. 이 열차가 내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되면 하루 공급 좌석은 현재 5만2000석에서 7만7000석으로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에스알 노동조합 측은 정부가 불확실한 통합 명분으로 시장을 흔들 것이 아니라 막대한 부채 상환 계획과 차량 구입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청구서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일정은 갑자기 당겨졌다. 당초 정부는 지난달 28일 간담회까지만 해도 2027년 말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불과 며칠 만에 2026년 말로 앞당겼다. 에스알 노조 측은 "처음엔 3년, 그다음엔 2년 얘기하다가 갑자기 1년으로 줄었다"며 "통합 명분의 허구가 드러나기 전에 서두르는 것 아니겠나"고 했다.

정부 "중복 비용 없애고 국민 편익 증대"

정부가 고속철도인 KTX와 SRT의 단계적 통합을 내년 말까지 추진한다. 내년 3월부터는 서울역에 SRT를, 수서역에 KTX를 투입하는 KTX·SRT 교차 운행을 시작한다. 하반기부터는 KTX와 SRT를 구분하지 않고 열차를 연결해 운행하며 통합 편성·운영에 나선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승강장에 열차가 정차해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국토부는 코레일과 에스알을 통합하는 내용의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통합 작업은 "이원화된 고속철도 체계를 하나로 합쳐 운행 횟수를 늘리고 국민 편의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구체화한 조치다.

정부와 코레일은 통합 시 기관 간 중복 비용 약 406억원을 절감하고, 좌석 공급을 하루 1만6000석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수익 구조가 개선되면 현재 경쟁사인 SRT보다 약 10% 비싼 KTX 요금을 인하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 로드맵대로 통합이 완료되면 양 사는 2013년 분리 이후 13년 만에 재결합하며, 2016년 SRT 개통으로 도입된 고속철도 경쟁 체제는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코레일 관계자는 "통합된 앱으로 편리하게 열차표를 구매할 수 있고, KTX에서 무궁화호로 환승 시 할인 적용 등 국민 편익이 늘어난다"며 "지난 3월에는 KTX 노후차량 정부 지원 여부가 결정되기 전이라서 17% 인상을 언급했지만 이후 관련 법 통과 등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건설부동산부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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