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사막] ⑥ 생존과 직결되는 복지 문제로 챙겨야…'진단체계 만들고 부처 간 연계 필요'

전문가 3인 인터뷰...한국형 해결책 부재
"통합적인 식품사막 진단체계 필요"
"이동식 마트 뿐 아니라 추가 대책 뒤따라야"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식품 사막에도 관심을"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문제를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고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서울에선 이해 못 하겠지만, 대한민국에 버스가 하루 2대 다니는 곳이 있어요. 어르신들이 장 보고 무거운 짐을 들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장보기가 사실상 생존을 위한 투쟁처럼 느껴집니다." 조원지 전북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전문가들은 식품사막을 복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 모은다. 원하는 때에 신선식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식품사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제대로 된 조사와 통계조차 없다. 정부 차원에서 진단체계를 마련하고, 부처 간 연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식품사막 주민들 저체중에 영양결핍…정신건강에도 영향

식품사막은 주민들의 영양 불균형을 야기한다. 전북연구원은 전북특별자치도를 대상으로 해당 조사를 실시한 결과, 농촌 식품사막에 거주하는 고령자 중 49kg 이하 저체중의 비율은 17.4%로 도시의 고령자와 비교하면 1.9배 이상 높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섭취하는 식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촌 식품사막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섬유질의 섭취량은 많은 반면, 근육 유지와 뼈 건강에 필요한 단백질, 칼슘, 비타민A 섭취량은 도시 주민 대비 현저히 부족하다.

본인이 원하는 때에 양질의 식품을 섭취할 수 없다는 불편함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구할 수 없다는 불안정한 상황이 노인의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불안이나 우울을 증폭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양결핍이나 식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어지면 뇌 기능이 저하돼 치매 등 인지장애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품사막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방 소멸의 위험신호라고 강조했다. 유 연구위원은 "식품사막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체육관, 병원, 약국 등 다른 업종들도 다 문 닫고 빠져나갔다는 것"이라며 "지역 상권이 소멸하고 있다는 징후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단체계도 없어…전국 식품사막 파악 급선무

문제는 전국의 식품사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5년마다 농림어업총조사로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행정리를 파악하고 있으나, 5년 주기로 나오는 데다 단순히 소매점의 유무만 따지고 있어 세세한 진단이 어렵다. 현재 식품사막은 각 지역연구원에서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으로, 중앙 차원에서 전국적인 조사나 데이터 취합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국적으로 식품사막이 어디에 얼마만큼 분포하는지 파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통합적인 식품사막 진단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어느 마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며 "고령 인구 비율, 대중교통 여건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한 체계를 구축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처 간 연계는 필수…이동식 마트 외에도 정책 뒷받침돼야

한 가지 대책이 아닌 여러 방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 연구위원은 "현재 정부 사업으로 시행 중인 농식품 바우처 사업이나 이동 장터 사업이 식품사막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지만, 이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수요 응답형 교통(고정 노선 없이 사용자 수요에 따라 운영하는 대중교통) 확대 등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부처 간 협업이 필수라고 봤다. 가령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푸드뱅크와 농림축산식품부의 가가호호 이동장터 등을 연계하는 식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이동식 마트도 원래 축산물 판매가 안 됐었는데, 식품의약안전처가 규제를 풀면서 가능하게 됐다. 결국 여러 부처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공공기관의 각종 역할과 서비스가 추가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생기는 식품사막을 연구했던 이누리씨도 마찬가지 의견을 냈다. 이씨는 "식품사막의 주민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히 마트 접근성 보장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이들을 어떤 커뮤니티에 넣어 챙길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충남 당진 합덕읍 도곡1리마을회관에 마련된 가가호호 찾아가는 당진농촌이동장터를 찾은 주민들이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도시 식품사막에도 관심을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 생기고 있는 식품사막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씨는 당부했다. 그는 "도시의 경우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다 보니 식품사막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농촌보다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라며 "주민들의 경제력이 떨어지거나, 주변이 재개발로 물가가 높아진 곳, 고령자의 커뮤니티가 잘 갖춰지지 못한 곳에 생겨나기 때문에, 주거 형태나 지역 특성을 고려한 세밀한 접근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가령 도시 식품사막 주민의 경우 신선식품이 있어도 조리를 할 수 없는 주거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씨는 "이런 곳에는 농촌 식품사막처럼 이동식 마트를 늘리는 것보다 신선식품을 조리한 형태로 공급하거나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잡힌 급식소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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