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기자
앞으로 미국 이민 비자를 신청할 때 당뇨병이나 비만 같은 만성 질환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미국 CBS 방송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이민 비자를 신청할 때 당뇨병이나 비만 같은 만성 질환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이 생겼다. 픽사베이
CBS는 미 국무부가 최근 전 세계 대사관과 영사관에 새롭게 하달한 지침을 통해, 비자 담당자들이 신청자의 나이·건강 상태·공적 지원 의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입국 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새로운 규정은 이민자가 미국 사회의 '공적 부담(public charge)'이 될 소지가 있는지를 보다 세밀하게 평가하라는 취지다.
지침에 따르면 신청자의 건강이 장기적인 의료비 지출이나 복지 지출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비자 발급이 거부될 수 있다. 국무부는 "비자 신청자의 건강 상태는 공적 부담 가능성과 직결된다"며 "일부 질환은 수십만 달러의 치료비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심혈관·호흡기·대사·신경계·정신 질환 등은 반드시 고려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비자 심사 과정에서 건강 관련 항목의 비중이 한층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결핵과 같은 전염병 여부, 예방접종 이력 등은 심사 과정에서 확인해왔지만 이번에는 만성질환까지 평가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미국 내 이민 전문 변호사 찰스 휠러는 "새 지침은 원칙적으로 모든 비자 신청자에게 적용되지만, 특히 영주권 심사 과정에서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CBS는 이번 지침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강화된 반(反)이민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체류자 추방과 비자 제한을 내세워 '공적 부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바 있다.
지침은 또 비만, 천식, 수면 무호흡증, 고혈압 등도 비자 발급 시 참고해야 할 항목으로 추가했다. 이는 만성질환이 향후 공공의료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아울러 비자 심사관은 신청자가 치료비를 자력으로 부담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이 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신청자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질환 여부도 심사에 반영된다. 국무부는 비자 담당자에게 "신청자의 부양가족 중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인물이 있어 지원자가 고용을 유지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 가족의 건강 상태 역시 비자 발급 판단에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지침이 즉시 시행될 경우 여러 혼란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지금도 이민 신청자는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전염병 검사와 예방접종 기록을 제출해야 하지만, 만성질환까지 포함하면 심사 절차가 훨씬 복잡해지고 비자 발급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CBS는 "비만과 당뇨병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만성질환으로, 성인 인구 10명 중 1명이 당뇨를 앓고 있다"며 "이런 기준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내 비만 인구는 1억 명이 넘고, 이로 인한 질환이 전체 암 발생의 40%와 연관된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비만과 당뇨는 사회·환경적 요인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어 이를 이민 자격 판단의 잣대로 삼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며 "공중보건 문제를 이민 통제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