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강나훔기자
올해 폭염 장기화로 '전기료 폭탄' 논란까지 제기된 가운데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검토에 나선 23일 서울 한 상가 건물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
정부가 4분기(10~12월)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며 연료비조정단가를 낮출 여지도 있었지만 한국전력공사의 누적 부채와 미반영 요금 규모가 여전히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로써 연료비조정단가는 2022년 3분기 이후 14개 분기 연속, 일반용 전기요금은 10개 분기 연속 동결이 이어지게 됐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연료비조정요금은 직전 3개월간 국제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중유 가격을 반영해 분기별로 산정된다.
올해 4분기 산정 결과 실적연료비는 404.21원/㎏으로 기준연료비(494.63원/㎏)보다 낮아 이론상 -12.1원/㎾h 수준의 인하 요인이 발생했지만, 전기공급약관상 상하한 규정이 적용돼 최종 단가는 +5원이 유지됐다.
정부는 한전의 재무 구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이번 결정을 설명했다. 산업부는 "한전의 재무 상황과 미조정 요금 규모를 고려해 2025년 4분기 연료비조정단가를 직전 분기와 동일하게 +5원으로 확정했다"며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도 병행해 달라"라고 밝혔다.
정치적 요인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요금을 인상할 경우 물가 부담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정부는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국민 체감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금 동결이 장기화되면서 한전의 재무 건전성 회복은 요원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2021년 이후 글로벌 연료 가격 급등에 직격탄을 맞아 적자가 누적됐고, 총부채는 올해 들어 200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몇 년간 전기요금 인상분 일부를 반영하며 지난해 8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재무 부담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시장에서는 내년 초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등 대규모 전력망 투자 재원을 마련하려면 한전의 자금 여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이 발행할 수 있는 채권 한도가 20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상화 없이는 필요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