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공병선기자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SPC 빵 공장의 근무 환경은 노후화된 기계(참고기사: ), 안전장치 미비 등(참고기사: )과 결합해 사고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기계를 중단하는 것이 곧 생산 목표 달성 실패로 이어진다는 압박이 강했던 빵 공장에는 감히 기계를 멈출 노동자가 없었다. 생산량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분위기는 당장 12시간 2교대 근무제를 폐지하더라도 사고가 반복될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9~11월 샤니 대구 공장에서 근무했다가 퇴사한 공의정 노무사가 당시 작성했던 일기장, 그의 동료였던 김모씨(36·여)의 증언, 그리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현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재구성했다.
공 노무사와 공장 입사 동기였던 김씨도 일기에 등장하는 일들을 늘 겪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정형반에서 SPC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어가는 햄버거 빵을 만들었다. 6구, 12구짜리 철판에 햄버거 반죽이 담겨 나오면 모양이 불량인 것은 없는지 이물질은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손 앞에 철판이 머무르는 시간은 5초 정도. 그 안에 6개, 12개짜리 반죽을 빠르게 검수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철판이 계속 움직이다 보니 일을 하다 보면 눈앞도 도는 것 같고, 마치 환 공포증처럼 느껴졌다는 것이 김씨의 이야기다.
그도 작업 중 위험천만한 순간을 겪었다. 오븐에 들어갔다가 다시 반죽을 담으러 나온 빈 철판은 곧잘 기계에 낀다. '덜컥'하고 철판이 이동하지 못하고 여러 번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다음은 김씨가 촬영한 영상이다.
원래대로였으면 공무팀을 불러 문제가 된 철판을 빼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런데 동료들은 공무팀 인원이 많지 않아 한 번 부르면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고 했다. 고참들은 이 정도는 공무팀 부를 정도가 아니라며 직접 목장갑을 끼고 오븐에서 막 나온 철판을 빼내면 된다고 가르친다. 빵이 철판에서 잘 떨어지라고 바르는 기름으로 바닥부터 기계까지 온 곳이 미끄러워도 기계 사이를 숙여가며 이동한다고 했다. 그나마 어디서 철판을 직접 빼야 하는지 알려주는 고참은 친절한 편이다. 대부분은 '눈치껏 알아서' 해야 한다. 일을 못 하면 지켜보고 있다가 또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베테랑들은 기계 돌아가는 와중에 작업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김씨는 포장반으로 재배치를 받아 봉투를 재단하는 일을 맡았다. 봉투는 위에서 칼날이 작두처럼 떨어져 비닐을 재단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비닐 포장 봉투는 들어가는 빵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한 제품 생산이 끝나면 다른 비닐 포장지로 갈아 끼워야 한다. 라인 고참은 "칼 떨어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며 기계 칼날이 그대로 떨어지는 데 손을 넣어가며 포장지를 교체했다. 칼날이 떨어지는 박자에 맞춰서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면 된다고 했다. 김씨가 교체해야 할 타이밍에 용기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으니 바로 고참은 "답답하니 나오라. 내가 하겠다"며 기계에 손을 넣었다.
공 노무사와 김씨, 그리고 다른 입사 동기들은 업무가 끝나면 단톡방에 서로 멍이 든 팔다리 사진을 올리곤 했다. 정신없이 일하고 뛰어다니다 보면 일할 때는 멍든 줄도 모른다고 했다.
<i>"작업하다 보면 빨리 빨리하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듣거든요. 동료들에게도 듣고. 제가 일을 머뭇거리거나 못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 본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i>같아요." 공 노무사는 이렇게 말했다.
SPC는 매일 수백만개의 빵을 생산한다. SPC가 홍보하는 '국내 최대 규모 평택 SPC 공장'에서만 하루 461만개의 빵이 만들어진다. 공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라인 하나에서 10분마다 몇천개의 빵이 나온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반죽을 만들어 붓고, 옮기고, 틀에 붓고, 굽고, 식히고, 포장하는 작업은 모두 연결돼있다. 한 파트가 중단된다면 나머지 공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문제가 생긴 제품은 불량으로 간주, 폐기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하루 생산 목표치가 몇만개씩 늘어나는 날이면 비상이 걸린다고 했다. 관리자는 다른 라인 대비 생산율이 떨어지지 않는지를 체크하고, 작업 속도가 떨어질 경우 분발할 것을 지시한다. 그래서 '위험하니 기계를 세우겠다'는 것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공 노무사뿐만 아니라 다른 퇴사자와 현직자도 "연차가 웬만큼 찬 반장도 라인을 세우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주임급 이상이 와서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기계를 멈추지, 그 아래 사람들은 기계 멈추는 버튼을 감히 누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 일하다 보면 '생산 우선' 원칙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고 했다. 어느새 스스로가 '빨리빨리'에 맞추게 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일머리가 없고 도태된 사람으로 비춰진다고 했다.
소스 배합기 사망사고 유족 측 소송대리인이었던 오빛나라 변호사는 이런 기업의 압박, 그리고 압박이 내재화된 분위기가 노동자들의 등을 떠밀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컨베이어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을 멈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람이 다치는 것이 더 비용적으로 저렴하다고 여기지 않고서는 이렇게 한 회사에서 사고가 반복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SPC 측은 공 노무사가 빵 공장에서의 경험들을 일기장에 적은 것과 관련해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밝혔다. 공장 안에서 노동자가 기계 자체를 멈출 수 없는 시스템, 즉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대해서는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활성화 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독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SPC의 기계 끼임 사고의 더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경제 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asiae.co.kr/visual-news/article/2025091015165318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