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일웅기자
체내에 삽입할 수 있는 반도체가 국내에서 개발됐다. 의료용 고무와 유기 반도체 나노섬유의 블렌딩 및 가황 공정을 통해 가능해진 성과물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경희대 오진영 교수 연구팀과 성균관대 방석호 교수 연구팀이 의료용 고무와 유기 고분자 반도체 나노섬유를 가황 공정으로 융합해 생체에 친화적인 신축성 반도체와 임플란트형 유기 전제 효과 트랜지스터(전기장으로 전하 밀도를 조절해 전류를 제어하는 전자기기의 기본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고 3일 밝혔다.
생체 삽입형 유연 전자소자용 신축성 반도체 및 논리회로 모식도. 오진영 경희대 교수 제공
의료용 고무는 국제 기준(ISO10993 등)에 따라 생체적합성·안전성을 인증받은 고분자 탄성체, 반도체 나노섬유는 고분자 반도체가 자기조립·상분리를 거쳐 형성된 나노 스케일 섬유 구조체를 말한다. 가황 공정은 황 원자로 고분자 사슬을 가교시켜 기계적 물성과 화학 안정성을 높이는 화학 공정이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50% 인장 변형과 체액 침적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구동되는 성능을 보였다. 생쥐 피하 이식 실험에서도 주요 염증 지표 변화 없이 조직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인체 삽입형 전자기기는 단단한 실리콘 반도체와 무기물 전자재료를 기반으로 제작돼 피부·근육 조직과의 기계적 불일치에 따른 염증과 섬유화 문제를 야기했다. 무엇보다 산업용 신축성 전자 소재는 장기적으로 체내에 삽입했을 때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상용화하는 데 한계가 따랐다.
이와 달리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반도체는 의료용 등급 탄성체를 적용해 국제 기준의 생체적합성을 충족했다. 또 체내 조직과의 기계적 불일치를 최소화, 은-금(Ag-Au) 이중 금속 전극을 도입해 체액 환경에서 부식 없이 안정 동작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존 인체 삽입형 전자기기가 가진 문제를 해소했다.
특히 해당 반도체를 기반으로 트랜지스터를 제작하고, 전자기기의 기본 구성 요소인 논리회로와 능동 매트릭스 어레이를 구현해 37도의 체액 환경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입증했다.
논리회로는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논리 연산을 수행하면서 디지털 전자기기의 연산·제어를 담당하는 핵심 회로를 말한다. 능동 매트릭스 어레이는 트랜지스터를 각 소자(픽셀) 단위에 배치해 개별 구동과 신호 제어가 가능한 2차원 배열 구조다.
공동연구팀은 체외 세포 실험에서 사람 진피섬유아세포(피부 진피층에서 세포조직의 구조와 상처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의 생존율·이동성·유전자 발현과 대식세포(병원체와 이물질을 제거, 염증반응과 조직 회복 조절에 관여하는 세포)의 염증반응에 부정적 영향이 없는 것도 확인했다.
오진영 경희대 교수는 "이번 연구성과는 반도체 소자의 신축성과 생체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체내 전자기기 상용화를 앞당길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현재 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진단·치료용 생체 삽입형 전자기기의 문제점을 해결해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전자기기 폼팩터로 발전할 잠재력도 크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우수신진연구사업,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ERC)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전날(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