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궁궐 의식에 온 듯'…문화유산 살아 움직이는 디지털 전시

영사기 마흔일곱 대로 400평 공간 감싼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 23일 개막
전통 유산과 첨단 기술 만남, 무료 관람

조선 왕조의 제례가 첨단기술로 되살아나고, 자개 무늬의 산수화 속 동물들이 관람객 주위를 뛰어다닌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2관에 조성한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의 체험 공간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각종 영상 기술로 재탄생됐다.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 전시 공간 모습[사진=국가유산진흥원 제공]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전통 유산을 디지털로 변환해 현대인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400평 크기의 공간에 고해상도 영사기 마흔일곱 대를 설치해 벽면부터 천장, 바닥까지 온통 영상으로 감쌌다. 국내에서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몰입형 전시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귀영 국가유산진흥원장은 19일 현장 설명회에서 "그동안 쌓아온 디지털 문화유산 자료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며 "하나같이 전통과 첨단이 만나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기획을 맡은 강신재 연출가는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문화유산이 갖는 미래 가능성을 탐구했다"고 말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가면 석탑을 모티프로 한 조형물이 천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석가탑, 다보탑 등 우리나라 대표 석조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LED 조명과 모터를 이용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 전시 공간 모습[사진=국가유산진흥원 제공]

첫 번째 구역에선 조선 시대 왕실 기록물인 의궤가 입체 영상으로 펼쳐진다. 길례(吉禮)와 흉례(凶禮)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해 사면 벽에 상영하는데, 마치 500년 전 궁궐 의식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실 한가운데 놓인 고서적들도 현장감을 더한다.

다음 공간의 주인공은 전통 회화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식물들이다. 사슴과 학, 소나무, 불로초 등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소재를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벽면을 채웠다. 자개의 은은한 광택을 더해 수려한 영상미를 뽐낸다. 관람객은 중앙에 있는 쿠션에서 편안하게 누워 천장까지 이어지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세 번째 구역은 무형문화유산 장인들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듯하다. 갓 만드는 기술자부터 전통 칼 제작자까지 다양한 공예 명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흑백 필름으로 담아 대형 스크린에 상영한다. 나무와 흙, 물 등 자연 재료가 예술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AI로 시각화하고, 실제 전승 공예품을 전시해 무형유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네 번째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는 조선 후기 임금의 능행 장면으로 꾸몄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참배하러 가는 행차를 그린 '화성행행도(1795)'를 22m 길이 벽면 전체에 펼쳐놓았다. 수백 명이 참여한 대규모 행렬이 마치 눈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연출됐다.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 전시 공간 모습[사진=국가유산진흥원 제공]

마지막 전시 공간에선 한국 문화유산의 세계화 과정을 보여준다. 강릉 아르떼 뮤지엄에서 호평받은 '이음을 위한 공유'를 재해석해 바닥과 기둥까지 활용한 360도 상영 시설을 구축했다. 벽면에 실제 유물 200여 점의 실루엣을 펼쳐 과거와 현재, 실재와 가상이 교차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한국 전통 범종을 형상화한 설치미술이 있다. 종소리와 함께 은은한 조명이 변화하며 관람객들을 배웅한다.

기념품 판매점에선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까치와 호랑이 캐릭터 액세서리를 비롯한 다양한 굿즈를 구입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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