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기자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에 적용되는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며 일단 안도하는 기색이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던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에는 관세장벽에 따른 부담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만여곳에 달하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약 88%가 연 매출 100억원 미만의 영세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관세 인상에 따른 충격은 완성차 업계보다 더 직접적이고 장기적일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1일 정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25%라는 '최악의 관세 폭탄'을 피해 한숨 돌리면서도 15%의 관세 또한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이 지금까지 약 2.5%의 관세를 적용받은 데 반해 우리는 FTA를 통해 무관세라는 이점을 누려왔으나, 이제 공통적으로 15% 관세라는 허들을 마주하게 된 만큼 경쟁력이 다소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중국이 아직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점은 변수지만, 중국의 경우 납품 단가 자체가 워낙 낮아 관세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고 업계는 내다본다.
충북에 위치한 한 자동차 부품사 관계자는 "북미 지역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관세 부담 때문에 해당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며 "관세가 낮아지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떨어져 당장 대응 방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어 일정 부분 관세 영향을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 부품업체들은 국내 생산 기반에 의존하고 있어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여기에 완성차 수출이 줄어들면 직접적인 부품 수요 감소, 완성차 업체로부터의 단가 인하 압박 등 간접적인 타격도 뒤따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대미 수출 비중은 2021년 30.3%에서 2024년 36.5%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북미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관세 인상은 곧바로 매출 하락과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부품업체의 경우 고관세 직접 영향뿐만 아니라 납품 단가 인하 압박 등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피해가 유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중소벤처기업부는 미국 관세로 인한 수출 중소기업의 피해를 지원하고자 4조6000억원의 정책자금을 투입했다. 이 중 4조2000억원은 관세·환율 등 통상 리스크에 대응하는 '위기 극복 특례보증'으로, 4000억원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으로 편성됐다.
관세 자체도 문제지만 이에 따라 급변할 시장의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당장 수출국 다변화나 미래차 부품으로의 전환, 완성차 기업과의 상생 협력 체계 구축 등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택성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은 의미 있는 결과"라면서도 "하지만 관세 부담이 여전히 부품업체에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중기부도 관세 피해에 대한 단기 지원에 더해 중장기적으로 수출시장 다변화 등을 지원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금은 FTA에서 벗어나 보호무역 체계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이를 기회로 살릴 수 있도록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