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서 갈린 승부…한미 15% 관세 합의 막전막후

스코틀랜드 회동서 협상 급물살
트럼프 만나기 전, 러트닉 장관이 협상 팁 주기도
이재용·정의선·김동관 등 재계 총력 지원도 한 몫

연합뉴스

한미가 30일(현지시간) 15% 관세 인하에 합의하며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협상의 막판 분수령은 스코틀랜드 회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과의 협상 직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측에 "다시 만나서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뉴욕 사저와 스코틀랜드 현지를 오가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협상이 이어졌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개입하면서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31일 화상으로 기자들과 만나 "러트닉 장관이 일본과 협상을 타결한 직후 우리 측에 연락해 만나자고 제안했고, 이후 협상이 빠르게 진전됐다"며 "특히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방법과 협상 접근법에 대해 여러 조언을 해줬고, 그 덕분에 협상의 마지막 국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이어 "스코틀랜드와 뉴욕 사저에서 밤늦게까지 협상을 이어가며 조건과 금액을 조율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직접 개입해 최종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향후 추가 협상 가능성과 관련해 그는 "이번 합의는 양측이 충분히 협의한 결과"라면서도 "글로벌 통상환경은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 강화와 제도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상에는 국내 재계의 지원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이 현지에서 인맥을 총동원하며 미 의회 및 재계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여 본부장은 "민관이 총력 체제로 움직였고, 이런 측면 지원이 협상 타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조선산업 협력 프로젝트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도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 본부장은 "조선업은 한국만의 비교우위를 갖춘 산업"이라며 "대통령실과 긴밀히 협의해 미국에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여 본부장은 자동차 관세율과 관련해 "한국은 FTA를 근거로 12.5%를 강하게 주장했으나, 미국은 일본·EU와 동일하게 15%를 적용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먼저 15%에 합의한 이후 정치적 반발을 고려해 한국 측도 속도를 낸 것이 결과적으로 타결의 배경이 됐다.

50%에 달하는 철강 관세가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된 점에 대해선 여 본부장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철강 232조 쿼터 설정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인하와 예외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 50%를 강하게 고수했다"며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EU 협상에서도 철강은 빠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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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본부장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8월 1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던 국별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진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25%에서 15%로 인하되며, 향후 부과가 예상됐던 반도체와 의약품 역시 다른 국가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된다.

또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가 조성된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한미 조선협력펀드로 편성돼 양국 조선산업과 미국 조선산업 생태계 전반에 투입될 예정이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원자력 등 전략산업 분야에 활용된다. 여 본부장은 "출자, 대출, 보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향후 4~5년에 걸쳐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도 진행된다. 다만 이번 협상에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 본부장은 투자펀드의 수익 배분과 관련, 일본의 사례 처럼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미국 내 재투자를 의미하며, 펀드 운영 과정에서 구조가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이 대출과 보증을 통해 펀드 운용을 지원하며, 기업의 무리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 상업성과 건전성을 확보한 구조로 설계된다"고 덧붙였다.

여 본부장은 협상팀에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그는 "협상팀에서 비관세 장벽을 담당하던 직원이 부친상을 당해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산업부와 통상본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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