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기자
누구나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을 보며 "왠지 믿음직하다"라거나 "어딘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직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의 본능적인 판단에 가깝다. 얼굴은 수많은 정보가 담긴 명함이자 표지판인 셈이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는 왜 얼굴에 혹할까'에서 익숙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얼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책의 1부에서는 우리가 얼굴을 인식하는 뇌의 놀라운 능력을 탐구한다. 가치관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처리와 인식의 영역이다. 아무리 '겉모습에 속지 말자'고 결심해도, 우리의 뇌는 0.1초 만에 타인의 얼굴을 분석해 나이, 성별, 감정까지 파악해낸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시선에도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흥미로운 점은 '내 얼굴'을 인식하는 방식과 '남의 얼굴'을 판단하는 기제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다.
2부는 얼굴의 매력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듯 보이지만, 연구 결과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왜 대칭적인 얼굴이 선호되는지, 화장이 왜 착시 효과를 주는지, 안경 하나가 신뢰도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책은 인류 진화 속에서 '얼굴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에도 주목한다. 저자는 인간의 눈에서 흰자위가 유난히 큰 점을 주목한다. 시선이 쉽게 노출되고 적에게 들킬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협력과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아군에게 시선의 방향을 알리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표정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식이다. 눈의 움직임, 미세한 근육의 떨림, 눈썹의 각도 등으로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톡스가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표정을 짓는 행위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얼굴 근육이 마비되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기 어려워지고, 이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타인의 표정을 인식하는 능력마저 떨어질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적인 내용을 생활 속 언어로 쉽게 풀어냈다는 데 있다. 뇌과학과 심리학이라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주제를 실생활 사례와 연결해 흥미롭게 설명한다.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시각 자료도 풍부하게 활용됐다. 초상권 문제로 인해 주로 저자나 지인의 얼굴, 혹은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인물 사진이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뤄진 새로운 연구들이 대거 반영됐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지내던 시절, 우리는 눈과 눈썹만으로도 감정을 읽고, 미세한 표정 변화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도록 훈련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경험이 얼굴을 통한 소통 방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얼굴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인간관계의 깊이를 탐험하는 여행서다. 제목과 달리 외모지상주의적 '얼평(얼굴 평가)'으로 흐르지 않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얼굴을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감정과 사회적 신호가 오가는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된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결국 인간과 그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는 타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의 얼굴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얼굴에 혹할까|최훈|현암사|308쪽|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