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놓고 흔들리는 관세협상…정부 내 이견에 국회 변수까지

한미 간 관세 협상이 8월1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을 앞두고 막바지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를 둘러싼 정부 내 이견과 국회 변수까지 복합적으로 얽히며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이 농산물 전반에 대한 포괄적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민감 품목은 최대한 방어하되 일부 품목은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둘러싼 부처 간 갈등이 협상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 한 관계자는 "미국이 철강·자동차 외에도 농산물과 디지털 분야까지 요구 범위를 넓히면서 협상 복잡도가 높아졌다"며 "일부 품목에 대해선 개방 여지도 있지만,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주요 농산물 개방 항목에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쌀 저율관세(TRQ) 물량 확대 ▲사과·블루베리·체리 등 과일 검역 간소화 ▲유전자변형농산물(LMO) 감자 수입 허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쌀과 쇠고기, 사과 등은 국내 농업계가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품목들로, 개방 여부에 따라 대규모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민감한 쟁점을 두고 부처 간 이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산업부는 관세 유예라는 긴급한 외교·통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품목은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협상 타결을 위해 유연한 태도도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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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 분야가 협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이른바 '패싱' 문제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과 쇠고기 같은 핵심 품목은 결코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며 "농업계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반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견은 실무 차원을 넘어 정치적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주요 농업 단체는 정부의 협상 방향에 대해 "농업을 다시 한번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이달 말까지 서울과 지역별로 릴레이 기자회견 및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으며, 국회와의 연대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농산물 개방이 협상 결과에 포함될 경우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헌법 제60조와 통상절차법에 따르면 국가 간의 조약이나 경제협정 중 국민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단순한 관세율 조정이나 대통령령 수준의 행정조치라면 비준 없이 시행 가능하지만, 농산물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방이 문서화된다면 이는 명백히 국회 비준 대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에도 쇠고기, 쌀, 과일 등의 단계적 개방 조항이 포함되며 국회 비준을 거쳤다. 이번에도 미국 측이 농산물 항목을 '상호관세 면제'의 조건으로 명시하고 이를 협정문 형태로 정리할 경우, 국회의 심의와 동의 절차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도 공청회와 정부 보고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협상이 국내 산업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통상 당국이 원활한 협상을 위해 일단 '원칙적 합의' 수준에서 마무리한 뒤 세부 민감 품목은 후속 실무협상으로 넘기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즉 구체적인 품목이나 수치가 아닌 원론적 수준의 합의를 통해 당분간 국회 비준 요건을 회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비준 회피 전략'이 오히려 향후 정치적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합의 내용이 사실상 농산물 개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비준을 피하려는 형식 논리는 국회와 국민 모두에게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며 "명확한 설명과 정당한 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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