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중국이 신약 임상시험 승인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하며 신약 개발을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국제 수준의 절차를 유지 중이나 임상 승인 속도와 고도화 측면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상 중간 단계에서 용량·적응증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적응형 임상(adaptive trial)' 등을 통한 임상 고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총국(NMPA)은 최근 임상시험계획(IND) 심사 기간을 기존 60영업일에서 30영업일로 단축하는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어린이·희귀질환 치료제, 국가 전략 핵심 신약 등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심사 중 특별한 이견이 없으면 자동 승인으로 간주되는 방식을 적용해 심사 속도를 극대화한다. 또 1등급 혁신 신약에 대해서는 30일 내 승인과 12주 내 임상 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 세계 임상시험 등록 건수에서 미국을 앞서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내 임상 데이터 확보를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중국 기업 간의 기술이전, 인수합병(M&A)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기존의 30영업일 IND 검토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안전성과 정확성을 최우선에 두고 적응형 임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신약 개발 기간을 줄이되 중간 분석과 용량 재설계 등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항암제의 적정 용량을 찾기 위한 접근법인 '프로젝트 옵티머스(Project Optimus)'를 추진하고 2상과 3상을 묶어서 진행하는 '심리스 2상/3상(seamless phase II/III)' 설계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개발 단계별 시간 단축과 부작용 최소화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적응형 임상은 임상시험의 주요 변수를 고정하지 않고 중간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용량, 투약 주기, 대상 환자군 등을 능동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기존 고정 설계에 비해 실패 확률을 낮추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임상 조건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중심으로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중국·미국의 임상 승인 신속화·고도화는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이 국가 간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한국도 속도와 안전성을 함께 잡기 위해 적응형 임상, 디지털 플랫폼, 동물실험 대체 기술 등의 도입과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임상시험 비용과 기간의 상당 부분이 초기 승인 대기와 단계별 설계 전환 과정에서 소요되기 때문에, 이를 줄이는 것이 신약 개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현재 30~60영업일 수준의 IND 승인 기간을 유지하고 있다. 다국가 임상 시험 등의 승인이 비교적 빠르게 처리되는 편이지만 속도 경쟁 측면에서는 중국·미국에 비해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제 기준에 맞춰 IND 심사 체계를 운영해 왔지만 적응형 임상과 같은 혁신적 설계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과 중국이 신약 임상 기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은 결국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자 신약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라며 "국내서도 임상 리뷰 단계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