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병원으로 복귀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제 돌아가 수련을 마치고 싶다"는 바람부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도 읽힌다. 사직 전공의들을 대표하던 기존 강경파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면서 의정 갈등의 실마리를 찾을 전환점도 마련됐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4개월을 넘어서면서 모두가 알게 된 이율배반적인 사실이 있다. 그동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치켜세우던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료 시스템이 실상은 전공의들의 저임금 노동력을 갈아 넣어 돌아가고 있다는 점, 동시에 전공의 없이 전문의로만 운영하는 병원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해 상황을 돌아보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자마자 전국의 상급종합병원에선 줄줄이 진료와 수술 일정이 연기·취소되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전공의 이탈로 수술 건수가 급감하고 입원환자 수가 줄자 병원마다 경영난을 호소하며 건강보험 재정을 끌어다 급한 불을 꺼야 했다. 환자로 북적였던 '서울 빅5' 병원에선 병상 가동률이 50~60%까지 떨어지면서 작년 한 해 동안만 총 2000억원대 적자를 봤고, 그마저도 장례식장이나 주차장, 부대시설을 제외하면 의료 부문은 6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의료 현장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해갔다.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가 급물살을 타면서 수술방의 부족한 일손을 대체했고, 비(非) 중증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만 고집하는 대신 스스로 2차 의료기관, 전문병원을 찾아 나섰다. 이제 상급종합병원의 환자 수는 의정 갈등 이전의 85~90%를 회복했다고 한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환자들의 피해 상담 건수가 지난해 3월 1200건에 육박하던 것이 이번 달엔 약 200건으로 예상된다니 무려 80% 이상 줄어든 셈이다.
그렇다고 안도할 순 없다. 전공의들을 대신해 꾸역꾸역 빈자리를 메워온 교수와 전임의, PA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이 모두 지칠 대로 지쳤다. PA 간호사의 업무 영역도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의료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의료의 질을 보장할 수는 없는 상태다. 한계에 다다른 전문의들이 병원을 떠나는 상황에서 뒤를 이을 전문의는 없으니 당장 3~4년 후의 의료를 보장할 수 없다. 의정 갈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 3조원(수련병원 선지급 포함)은 모든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가 됐다.
이런 와중에 전공의들이 그동안 고수해온 '7대 요구안' 등을 전면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작지 않은 변화다. '수련 시간 단축' '전문의 시험 추가 시행' 등을 요구하는 건 가뜩이나 부정적인 여론에 또다시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복귀 희망'에 이런저런 조건들이 붙게 되면 당초 돌아오겠다는 의도도, 진정성도 퇴색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 공백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있고, 무너진 의료를 가까스로 붙잡고자 병원에 남아 있는 의료진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새 정부가 출범하며 마련된 대화의 장에서 전공의들이 더욱 성숙한 사회적 책임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돌아올 수 있을 때 스스로 돌아오는 것, 환자들 곁을 지키며 더 나은 의료를 위한 고민과 협상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진짜 의사로서의 소명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