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보험사 고무줄 회계 논란…중요한 건 낙관도 보수도 아닌 '설명책임'

보험업계에 장기보험 예상손해율 가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일부 보험사의 낙관적 손해율 가정으로 실적이 부풀려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도화선이 됐다. 그의 발언 이후 보험업계에선 손해율 가정의 낙관론과 보수론 중 어느 게 맞는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보험사가 파는 장기보험은 '20년납 100세만기' 등 장기간에 걸친 계약을 통해 수익(보험료)을 얻고 비용(보험금)을 지출하는 구조다. 2023년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17) 체제에서는 보험계약과 관련해 미래에 얼마큼의 보험료가 들어오고 어느 정도의 보험금이 나갈지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가정해 정하도록 한다. 예컨대 A보험이 100년간 100억원의 보험료를 거둬 80억원의 보험금을 내줄 것으로 예상하면 '낙관적', 12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할 것으로 보면 '보수적' 가정이다.

방식이 어떻든 가정과 실제 수치의 차가 0에 근접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테다. 하지만 보험회계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가정방식에 따라 보험사 이익의 근간인 보험계약마진(CSM)과 재무건전성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보험료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낙관적 가정을 하면 CSM과 킥스를 높이는 한편 보험료를 낮춰 상품경쟁력을 올릴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회사 이익을 선반영하고 손해는 뒤로 미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뜻 보면 가정을 보수적으로 가져가는 보험사가 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적 뻥튀기 논란에서 자유롭고 위험을 최대한 관리하는 기업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적 가정도 만능은 아니다. 보험사가 손해율을 높게 가정하면 그만큼 보험료가 올라간다. 또 지나친 보수적 가정은 예실차(예상손해율과 실제손해율의 차이)를 키우는데, 이는 당기 회계에서 즉각 배당 재원을 늘리게 된다. 낙관적 가정처럼 CSM을 직접 부풀리진 않았으나 여러 해에 걸쳐 순차적으로 이익에 반영해야 할 CSM 중 일부를 즉각 인식한다는 점에서 '미래 이익을 당겨쓴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래서 낙관론과 보수론 중 정답은 없다. 보험고객 입장에서는 저렴한 보험료를 제시하는 낙관적 가정이 유리하다. 투자자들은 탄탄한 배당여력을 확보하는 보수적 가정을 더 선호할 것이다.

이러니 보험사들은 가정의 우위를 놓고 갑론을박하기보다는 '설명책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왜 이런 가정을 적용했는지, 이 가정을 택하면서 어떤 통계를 활용했는지, 해당 가정으로 소비자와 투자자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최근 보험사에 가정의 근거를 소명하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다. 현재까지 이런 '설명책임'에 충실한 보험사는 없다. 자신이 택한 가정에 대한 합리적·논리적 설명을 회피한다면 그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경제금융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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