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의대생들, '폭력집단'으로 변질되지 말아야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싶은데 눈치가 보이고 두렵다는 동기와 선후배들이 여전히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널리 알려주세요." 기자는 최근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 지역의 의과대학 22학번 학생 A씨로부터 이처럼 절절한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당초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지난해부터 휴학에 동참했었다고 한다.

정부와 대학들이 '미등록 시 제적'이라는 원칙을 밀어붙이면서 대다수 의대생이 복학했지만 교정의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럽다. 복학했으니 일단 수업에 열심히 임하고 학사일정을 소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쪽과 복학은 제적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일 뿐이었으므로 수업 거부 같은 방식의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확 갈리면서다.

이 중 '다수파'는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쪽이다. 수도권의 한 의대 특정 학년 학생들이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의 결과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정원 120명 중 90명가량은 수업을 거부하자는 목소리를 냈고 나머지 30명가량만이 수업에 임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기자에게 연락한 학생은 당연히 '소수파'에 해당한다. A씨는 "투쟁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고, 빨리 배움의 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열망도 있는데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낙인찍힐까 봐 너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의대 현장에선 A씨와 같은 입장의 학생들을 향한 도를 넘은 비난과 폭력적인 언행이 활개 친다. 의대생 커뮤니티 등에서 '감귤(수업 참여 의대생 일컫는 은어)은 다 처단해야 한다'식의 조롱이 잇따르고 '수업 복귀자 리스트를 작성했으며 추후 배포하겠다'는 위협이 횡행하는 게 일례다.

'일부 정책의 추진을 막았다면 이젠 교실로 돌아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협상을 해야 한다'거나 '계속 버티기만 한다면 정부도 일부를 정말 제적시켜버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누가 지켜줄 것이냐' 같은 내용의 게시글은 올라오자마자 거센 '신고'의 행렬에 막혀 순식간에 삭제되기 일쑤다.

이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과 냉소적인 시선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대학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충분한 대안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업에 참여하려는 동료들을 압박하고 비난하는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그토록 강경한 방식의 투쟁과 편 가르기·낙인찍기를 통해 지금까지 무엇을 얼마나 얻어냈는가. 이해관계에 매몰된 '어른들'의 선동과 의도적 방관에 휘둘린다는 생각을 해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의-정이 극한 대립하는 지난 1년여의 시간은 미래 의료계의 주역인 의대생들의 존재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잘 드러냈다.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동료들을 괴롭히면서까지 사회에 어필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작금의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의대생들은 의대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때 진정한 의미의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절실하게 되새겨야 한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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