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수산업 매니징에디터
정국 향배는 세 가지 길로 상상할 수 있다. 탄핵이나 임기 단축과 같은 극단적 결말,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수용을 출발로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획기적 기조 변화. 세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 높은데, 대통령과 야당·시민사회 간 '강 대 강' 대치 상태가 다음 대선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민생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지금의 교착 상태를 끝내려면 어느 한쪽이 결정적 승부수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 입장에선 기조 변화가 유일한 돌파구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희망을 포기한 지 오래다. 반대 방향으로 상태 변경은 파국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은 최서원 태블릿PC를 떠올리며 명태균 휴대전화에서 충격적 내용을 담은 윤 대통령 혹은 김 여사의 육성 녹취가 발견되는 데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그런 일이 실제 벌어진다고 해도, 이후 상황이 야당 생각대로 흘러갈지는 불분명하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나 치명적 국정농단 증거가 폭로될 경우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탄핵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겪어본 강제적 정권 교체 과정의 상처, 무엇보다 그 혼란의 끝이 곧 우리가 바라던 세상의 도래를 자동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회의감은 박근혜 탄핵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다.
현 정권을 탄핵으로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어느 정도로 큰가에 대해서도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지배적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와 천주교 사제의 시국선언 그리고 매주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우는 시민 집회를 주요 뉴스로 반복해 전달하는 언론 속 세상은, 작은 불씨만 있으면 탄핵 열차가 기다렸다는 듯 출발할 것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반면 야당의 몽니나 과격한 시민 일부의 떼쓰기 정도로 치부하며 고개 돌린 언론이 그리는 우리 사회는 아무 일 없는 듯 평화롭게 흘러간다.
이러한 모든 정황은 우리가 극단적 결말만은 피하는 방향으로 지금의 고착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리킨다. 강제적 정권 교체가 온 국민의 바람으로 지지받지 못한 채, 그 이후의 우리나라가 더 좋아질 것이란 확신 없이 출발하는 탄핵 열차는 우리 모두를 8년 전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불행한 미래로 떠밀게 될 것이다.
결국 가장 가능성이 낮음에도 포기할 수 없는 길, 그것은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하고 끌어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사람이 기대를 접었음에도, 어쩌면 끝내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일련의 노력과 좌절은 우리 시민사회 집단지성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자체로도 무의미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안녕과 민주주의 회복, 무엇보다 경제·민생에 가해질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인 길이라 믿는다.
탄핵이냐 아니냐를 두고 우리 사회가 극단적 혼란으로 치닫는 것도, 현 교착 상태가 소모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정권 그리고 모두의 실패를 의미한다. 윤 대통령도 이 나라에 그런 미래를 초래하고자 정치에 뛰어든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방법도 없다. 고통스럽겠지만 위기의 원인에 정면승부하는 결단만이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