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형기자
K-반도체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재검토 및 대중 수출 규제, 메모리 과잉 재고 우려 등이 투심을 악화시키고 있다. 증권가는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회복이 올해는 힘들 것으로 관측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 거래일 기준 삼성전자는 5만42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최근 3거래일간 7.03% 내렸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도 9.71% 하락하며 '반도체 투톱'이 동반 약세를 보였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 제재 강화를 검토 중이며, 이 과정에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수출 제한 업체 명단(Entity list)에서 제외될 것이라 보도하면서 메모리 공급 과잉 우려가 불거졌다. 아울러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제한 조치도 포함될 것이라는 점 또한 국내 반도체 주가에 악재로 작용했다.
증권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전까지는 반도체 업종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후 반도체주는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외생 변수를 더 많이 반영하면서 하락세"라며 "트럼프 2기 출범 후 구체적인 정책이 발표돼야 비로소 불확실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전까지는 특정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주가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악재와 더불어 전방 산업 수요에 적신호가 켜진 점도 투자 심리를 악화시키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는 지난해까지 극도로 부진했던 PC 및 스마트폰 수요가 인공지능(AI) 노트북 등에 힘입어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일반 대중이 지갑을 열 만한 '킬러 제품'이 부재하면서 반도체 재고가 누적되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온디바이스 AI의 셀아웃(소비자 판매)이 부진해 PC와 스마트폰 관련 주요 부품의 재고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문제"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러한 영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이어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D램 매출액 값이 피크를 지나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는 국면인 것으로 보인다. 향후 D램 사이클의 다운턴 전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도 재고 누적 문제를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내년은 이전 2년간의 흐름과는 반대로 반도체 업체의 재고가 증가하는 시기일 것"이라며 "현재 과잉 재고는 강력한 AI 투자 확대와 HBM 생산 비중 증가에 따라 레거시(범용) D램 및 낸드 생산이 정체되고 가격이 장기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한 투기적 매수가 원인"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나 현실은 AI를 제외한 IT 부문의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AI 서버 생산량이 실제 필요량보다 많아 경기 둔화 등에 따라 AI 투자가 내년 하반기 또는 내후년에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미국 정책 불확실성과 어두운 업황 전망에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회복은 내년 2분기 이후에 기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내년 2분기로 갈수록 엔비디아 HBM3E 진입 등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주가 상승 모멘텀이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D램 부문은 내년 하반기 공급 부족에 따른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나, 낸드는 다운 사이클로 진입함에 따라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할 수 있다. 주가는 박스권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