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富 대물림 욕망에서 탄생한 것이 신탁'[금융人사이드]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김하정 센터장 최윤정 팀장 인터뷰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오른쪽)과 최윤정 리빙트러스트 센터 팀장이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고객의 삶을 넘어 죽음까지. 단순히 부의 이전이 아닌 가문을 관리합니다."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하나은행의 신탁서비스를 이처럼 정의했다. 신탁은 말 그대로 믿고(믿을 신·信) 맡긴다(부탁할 탁·託)는 뜻이다. 살아생전에는 고객의 의사대로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다가, 사망 후에는 신탁계약 내용대로 금융사가 관리·보관 및 집행하는 서비스다.

국내 최초의 단기금융회사(단자사) 한국투자금융이 모태인 하나은행은 시장 트렌드와 부의 흐름을 읽는 데 탁월했다. 신탁을 국내 금융권 최초로 도입한 것도 하나은행이 부자들의 마음을 읽는 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평생 쌓아올린 부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영속하길 바라는 욕망, 사후에도 그 뜻이 이어지길 바라는 욕구를 재빠르게 읽은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신탁서비스다.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이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 센터장은 "하나은행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보다 절차가 간편하면서도 법적 분쟁의 소지가 유언장보다 적어 상속의 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며 "고객이 신탁을 통해 자녀에게 상속하고, 상속받은 자녀가 또 신탁을 통해 자산관리를 맡기면서 자연스레 2대, 3대까지 고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고액자산가 혹은 죽음을 앞둔 고령자들이 주 고객층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신탁서비스가 점점 대중화하고 있다.

최윤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은 지점 근무 시절 고객이었던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신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80대 고령인 할머니는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으로, 돌봐주는 간병인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은행 예금으로만 1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로 늘 주기적으로 은행에 방문했다. 그러다 한동안 은행에 방문하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간병인이 할머니와는 지금 통화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의 은행 예금 거액이 인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병인이 빼간 것이었다.

최 팀장은 "요즘에는 이 할머니처럼 1인 가구뿐 아니라 영리치의 등장, 재혼가정과 같은 다양화된 가족형태가 나타나면서 신탁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다"며 "그래서 신탁은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생물 같다"고 표현했다.

최윤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팀장이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실제로 신탁 서비스를 문의하는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두 자녀를 둔 60대 A씨는 아내와 사별 후 재혼을 앞두고 하나은행의 리빙트러스트센터를 찾았다. 아내가 남긴 보험금이며, 평생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을 사별한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에게 남기기 위해서다. A씨는 새 가정을 꾸리기 전에 갈등요소가 될 만한 요인을 정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김 센터장은 "A고객처럼 상속 및 증여 등 자산 정리를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회환원이나 기부 등을 문의하시는 고객들도 늘었다"며 "부의 이전이 혈연이나 친족간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는 요구가 강해진 것이 최근 부의 이전 트렌드"라고 말했다.

신탁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한참 전부터 하나은행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령화에 따른 상속 이슈가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2년 신탁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서울신탁은행을 인수한 것도 우연이 아닌 하나은행의 계획이었다. 이때부터 하나은행은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데 더욱 노련해졌다. 하나은행이 합병한 옛 한국외환은행도 신탁에 강점이 있었다. 업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국내 첫 '월복리신탁'도 외환은행의 작품이다. 당시 외환은행은 이 상품 하나로 은행계정을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렇게 신탁분야의 노하우를 쌓아 2010년 4월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하며 리빙트러스트센터를 열었다. 현재 리빙트러스트센터에서 내놓은 신탁 상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성화돼있는 금전신탁뿐만 아니라 유언대용 신탁, 보험금청구권신탁, 미술품신탁까지 다양하다.

최 팀장은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올해 2분기 말 기준 3조5000억원 규모인데, 이 중 80~90%가 하나은행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말 8800억원에 불과하던 수탁 규모는 매년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오른쪽)과 최윤정 리빙트러스트 센터 팀장이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하나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은행권 최초로 프라이빗뱅커(PB)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현재 하나은행은 자산관리그룹 내 신탁본부를 비롯해 투자상품본부, WM본부 등을 거느리며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WM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탁시장이 대중화된 만큼 앞다퉈 금융사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금 실물을 상속 및 증여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신한은행은 '신탁라운지', 우리은행은 '가족신탁팀'을 꾸려 대응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더 많은 경쟁사가 이 시장이 뛰어들길 바란다"며 "시장이 커질수록 경쟁력도 강해지고,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은행의 발자취가 후발주자들이 따라오는 길잡이 노릇을 하며 이 시장을 점점 확대해나가고 있다"며 "하나은행이 이 시장을 선도하며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는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경제금융부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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