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준기자
양낙규군사전문기자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사실상의 '군사동맹'이 효력 발동을 앞두고 있다. 서로에 대한 군사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북한군의 추가 파병을 위한 빌미로 활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12일 조선중앙통신은 "평양에서 체결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국무위원장 정령으로 비준됐다"며 "국가수반은 11일 정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정령'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발령하는 법 규범의 한 형식으로, 사회주의 헌법과 최고인민회의 법령에 이은 법적 구속력과 권위를 갖고 있다.
앞서 러시아 상·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출한 조약 비준안을 각각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조약에 최종 서명했다. 그간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비준 절차를 거친다는 소식이 없었지만 북한 헌법상 중요 조약으로 판단하면 국무위원장 직권으로 비준할 수 있어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달린 일로 평가됐다.
양측이 비준 절차를 마무리한 만큼 서로 비준서를 교환하면 조약의 효력은 무기한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 조약은 옛 소련 시절 조·소 우호 조약에 담긴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사실상 부활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핵심은 제4조다. '어느 한쪽이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지체 없이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취지의 내용이다.
조약의 효력이 발동되면 당장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에서 북한군이 전면적으로 전투에 투입될 가능성이 열린다. 일례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북한군 파병을 시사하는 위성사진이 공개되자 그 자체를 부인하진 않으면서 문제의 '제4조'를 상기했다. 당시 그는 "우리와 북한의 관계에 대해 여러분은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비준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 조약에는 제4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서방이 지적하는 북한군 파병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 셈이다.
나아가 파병 문제를 정당화하거나 추가 파병을 위한 빌미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쿠르쿠스 지역에서 적군 약 5만명과 교전 중이라며, 이 일대에 북한군 1만1000명이 배치됐다고 주장했다.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7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1만1000명'이라는 예상치 이상의 추가 파병이 아직 이뤄지진 않았다면서도 "더 많은 북한군이 전장으로 향할 수 있는가, 확실히 그럴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조약은 단순한 파병 수준을 넘어 한반도에 다양한 안보 불안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러시아의 핵전력이 북한으로 확장·전수되거나 북한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도 커졌다. 푸틴 대통령은 북·러 연합훈련 전망에 대해 "왜 안 되겠느냐"라고 열어둔 상태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러 고위급이 비준서를 교환하는 의식을 열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