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류딱지 붙은 내 신혼집'…깔끔하게 해결됐다더니 빌라왕 덫에 걸렸다

[수상한 新빌라왕: 제2의 전세사기 공포]③
집주인도 부동산도 "문제 없는 집"이랬는데
알고보니 전세사기 문제 해결 안 된 '위험한 집'

집주인은 전세사기 주택 수십 채 낙찰 '빌라왕'
시세보다 2000만원 싸게 내놔 세입자 현혹
보증금 못 돌려받거나 쫓겨날 위험에 불안 커져

겉보기에 멀쩡했다. 신혼집으로 점 찍은 집이었다. 집주인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까지 "문제가 다 해결된 집"이라 했다. 공인중개사도 온갖 서류를 들이밀며 거들었다. 현관문에 압류딱지 여러 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입주하는 날, A씨는 제 손으로 빨간딱지를 하나하나 떼어 내고 이삿짐을 들였다. 이 집의 권리 관계를 비롯해 상황을 파악한 것은 이사 후 8개월여 만이었다. A씨는 ‘제2의 전세사기’ 위험이 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계약이 끝나기까지 1년도 더 남은 시점이었다. 불안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7월과 8월 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에서 전세사기 피해 빌라에 새로 입주한 복수 임차인을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권현지 기자

A씨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입주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권리관계가 소멸하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 빌라를 파악한 뒤 A와 같은 세입자들을 만났다.

지난해 여름, 30대 A씨는 경기 부천 원미구에서 남편과 살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한 유명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괜찮은 매물이 올라온 것을 보고 '임장'에 나섰다. 계약을 중개한다는 원미구 춘의동의 한 부동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실제로 본 집은 사진과 달랐다. 중개인은 실망한 A씨를 다른 집으로 데려갔다.

준공 5년 차의 깔끔한 5층짜리 빌라였다. 널찍한 주차장을 지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한 층에 2가구뿐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해 합격점을 줬다. 내부는 방 3개, 욕실 2개, 베란다가 딸린 34평형. 신접살림을 차리기에 적당해 보였다. 잠시 거쳐 갈 집이니 부담감도 덜했다.

계약 당일 집주인이라고 온 사람은 자신을 법인 대표라 소개했다. 법원 경매에서 이 집을 낙찰받았다고 했다. A씨가 계약을 맺기 6년 전쯤 40대 진모씨가 2억2900만원에 매수해 세를 놨다. 하지만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2020년 10월 경매로 넘어갔다. 11번 유찰된 끝에 지난해 8월 현재 집주인인 S법인 품에 안겼다. 감정가(2억3300만원)의 2%(482만원) 수준에 낙찰받았다.

이 법인은 전에 살던 임차인과는 깔끔하게 해결됐고 권리관계도 남아 있지 않아 문제없다고 단언했다. 중개인도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니 A씨는 안심했다. 오히려 집주인이 개인이 아닌 법인이라 보증금 떼일 일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A씨는 S법인과 지난해 9월 2년 월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S법인은 이 빌라 말고도 수십 채의 전세사기 피해 빌라만 낙찰받은 '빌라왕'이었다. 헐값에 낙찰받은 빌라에 새로 임차인을 들이고 이 보증금으로 다시 다른 빌라를 낙찰받는 방식으로 자산을 늘렸다. 2022년 전세사기 사태 발생의 원인인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자산을 불린 것이다. 만약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동시에 상환해달라고 할 경우 제2의 전세사기 사태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임차권등기(전세보증금을 가장 먼저 돌려받기 위해 세입자가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남아 있는 주택이라면 새로운 세입자의 권리는 후순위로 밀려 보증금을 못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부동산 경매 전문 사이트 지지옥션, 법원 등기부등본 등을 대조 분석해 권리관계가 소멸되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 빌라에 새로 입주한 임차인을 확인했다. 사진=권현지 기자

전세사기 가능성에 노출된 건 A씨뿐만이 아니었다. 부천 원미구에서 만난 20대 후반 직장인 김모씨도 올해 1월 임차권등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에 입주해 있다. 2018년 준공돼 방 3개, 욕실 2개, 베란다로 이뤄진 집이다. 원래 40대 개인이 소유했으나 세입자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2022년 4월 강제경매가 진행됐다. 이 집은 9번 유찰 끝에 지난해 11월 S법인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S법인은 변제되지 않은 보증금을 상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씨와 2년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A씨와 김씨는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시세보다 싼 임대료에 매료됐다. 주변 신축 ‘쓰리룸’ 빌라는 보통 보증금 2000만~3000만원에 월세 80만~120만원을 받았다. 반면 S법인은 이를 대폭 낮춰 세입자를 들였다. A씨 집은 처음에 보증금 1000만원, 월 65만원에 나왔는데 월세를 더 깎아달라는 A씨 요청에 보증금 1500만원, 월 60만원으로 계약을 맺었다. 김씨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 월세 70만원을 내면 됐다. 김씨는 “주변 다른 준신축 빌라들보다 월세가 40만~50만원가량 낮아 계약했다”며 “지인 몇몇도 이런 집에 살고 있어서 특별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인들이 서류상에 신분을 감춰 세입자를 속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낙찰받은 물건을 제삼자에게 팔거나 다시 경매하려고 하면 등기를 해야 하지만 임대차 계약을 맺을 경우에는 등기하지 않아도 된다. 정경국 법무사(대한법무사협회 전세피해지원 공익법무사단장)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 남은 권리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등기를 회피해 세입자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설부동산부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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