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대학생 양윤지씨(23)는 지난 학기 제출한 교양 수업 과제에서 챗GPT를 활용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어진 서적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는데 챗GPT에 책 내용 중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위주로 '논리적으로 서술해줘'라고 적자, 금세 분량에 맞춰 감상문이 만들어졌다. 양씨는 챗GPT가 써준 감상문을 살짝만 수정해 제출했지만, 평가에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양씨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서술하는 게 어려웠는데, 챗GPT가 원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매끄럽게 적어줘서 편리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동기들도 챗GPT를 많이 활용한다. 어떤 수업에선 교수님이 아예 시험 시간에 챗GPT 활용을 허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챗GPT를 활용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활용 지침은 모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험 답안지 작성부터 과제, 연구 논문 작성에까지 챗GPT 활용이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관련 지침이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서는 시험 시간에 챗GPT 활용을 허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와 고려대 일부 학과에서는 수업 시간에 주어진 문제에 대해 챗GPT를 통해 답변을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판적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수업 내용 중 일부로 포함돼 있다. 경희대에서는 시험 시간 챗GPT를 활용해 답안지를 작성하는 '오픈 챗GPT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시험시간을 포함해 과제, 논문 작성에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챗GPT를 활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실제 업무에서 검색 엔진을 사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듯 시험의 답을 찾을 때도 챗GPT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챗GPT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이를 과신하지 않고 얼마나 정확하게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챗GPT 활용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챗GPT를 활용해 제출한 시험 답안지와 과제, 논문 등이 전공지식에 대한 이해력과 사고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챗GPT를 활용해 과제물을 제출한 것이 확인될 경우 감점 요인이 된다고 명시하는 등 챗GPT 활용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대학생 한모씨(25)는 "수업별, 교수별로 챗GPT 허용 여부나 범위가 모두 다르다"며 "어떤 학생은 챗GPT로 간단하게 작성한 과제물로 높은 점수를 받아 가는 것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도 느낀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주요 대학들은 학교 차원에서 '챗GPT 활용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도 했다. 지난해 고려대와 국민대는 각각 '챗GPT 기본 활용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챗GPT를 활용함으로써 불거질 수 있는 표절과 윤리적 사용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강조했다. 그럼에도 챗GPT 활용 여부와 범위에 관한 내용은 담당 교수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는 탓에 과목마다 적용되는 양상이 다르다.
임정묵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어떤 교수가, 어떤 과목에서, 어떤 방식으로 챗GPT 활용을 허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모두 교수의 자율 권한인 만큼 파악하기 힘들다. 챗GPT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챗GPT 활용 시 출처에 이를 반드시 명기하는 등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앞으로 챗GPT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챗GPT를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