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임종룡號]④'특출난 관료' CEO 왔지만, 조직문화 개선은 없었다

임종룡 체제서 연세대 학맥 두각…상업銀 출신들도 요직 꿰차
손태승 부당대출 지연보고에…'한일銀 출신 손 라인 건재' 시각도
이복현 “새 회장·행장 체제도 과거 구태 반복”

특출난 금융관료이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직을 훌륭히 수행했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로 온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금융·우리은행 내부의 조직 문화에는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체제 안정기에 접어 들었음에도 180억원대 횡령사고,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한 지연보고 의혹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금융권에선 임 회장이 취임 전 금융위원장과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재임 시기의 업적, 우리금융 회장 취임 이후 포트폴리오 확장 등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특정 학맥·인맥이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는 등 또 다른 구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과 1인 독주체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금융·우리은행의 조직문화를 바꿔낼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연세대 출신 인사들 약진…상업은행도 득세

“임종룡은, 되는 사람이에요.” 임 회장과 수십 년의 관료 생활을 함께한 전직 차관급 인사의 전언이다. 제3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제5대 금융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금융권에서나 관가에서나 굵직한 성과를 여럿 내 온 거물이다. 우리은행 민영화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만큼 우리금융과의 인연도 깊다.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그를 재소환한 이유는 ‘조직문화 혁신’이었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700억원대 횡령 사건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당시 우리금융은 조직문화 개선이 시급한 시기였다. 임추위는 추천 배경으로 “과감한 조직 혁신을 위해선 오히려 객관적 시각으로 조직을 진단하고 주도적으로 쇄신을 이끌 수 있는 인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 회장 취임 초반부터 인사에서 특정 학맥 출신이 약진하기 시작하면서 조직문화 혁신과 관련한 평가는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임 회장이 지난해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인사를 보면 주요 9개 지주 부문장 중 연세대 출신은 4명에 달했다. 연세대는 임 회장의 모교다. 임 회장을 포함하면 지주 주요 포스트 10개 중 절반이 특정 학교로 채워진 셈이다.

유일하게 유임한 이성욱 재무부문장 부사장도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며, 요직이라 할 수 있는 경영지원부문장에도 연세대 출신 이해광 본부장이 선임됐다. 그는 임 회장과 같은 경제학과 출신으로, 회장 내정자 시절엔 비서실장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 영입 케이스인 장광익 브랜드부문장 부사장도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직속 후배에 해당한다. 미래사업추진부문장에도 연세대 출신 김건호 상무(전 시너지추진부 본부장)가 승진 임명됐다. 이외 자회사 CEO 인사에도 학맥·인맥의 영향이 적지 않단 평가다.

이후 특정 학맥·지연을 중심으로 한 인사에 대한 투서·비판이 계속되자 우리금융은 지난해 하반기와 올 초에 걸쳐 인사를 다양화했단 평가를 받는다.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도 임 회장 체제에서 중용되는 분위기다. 우리금융의 최대 주력계열사인 우리은행을 보면 조병규 행장을 비롯해 기업투자금융부문, 국내영업부문, 자금시장부문 등 주요 부문장들은 모두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이 맡고 있다. 손 전 회장 체제에서 한일은행 출신들이 중용됐단 평가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셈이다.

임 회장의 1인 독주체제도 굳건해진 분위기다. 일례로 무엇보다 조 행장은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서 배제돼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최대 주력계열사 CEO지만 정작 최고 수뇌부엔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금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지주회사에선 최대 계열사인 은행장도 금융지주회사의 기타 비상무이사 등으로 이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올 초 인사에서도 1000억원대 파생상품 손실사태로 중징계를 내린 바 있는 전직 임원을 자회사 대표로 임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계보 형성과 독주체제가 앞서 거론해 온 기존의 조직문화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단 점이다. 우리금융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의 과거 업적과 리더십이 훌륭하긴 하지만 십수 년간 외풍을 겪어온 우리금융 입장에서 보면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라며 “새로운 인맥이 형성된다고 해도 새 회장 체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만큼 기존의 조직문화를 대체하기는커녕 얽히고설킨 연줄과 인맥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부당대출 보고 지연…손태승 라인 건재하다는 시각도

우리금융·우리은행 조직문화가 새 회장 체제에서도 달라지지 않으면서 기존의 행태는 반복되고 있다.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 라인이 아직 건재하다는 시각도 있다.

조직에서는 인사와 재무가 핵심인데 우리금융지주에서 인사를 맡은 이해광 경영지원부문장과 재무를 맡은 이성욱 재무부문장은 한일은행 출신으로 손 전 회장 라인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연세대 상대 동문이기도 하다. 우리은행에서 인사를 맡은 이명수 HR그룹 부행장도 한일은행 출신이다.

최근 대리급 직원의 180억원대 횡령 사고가 공개되자 당시 박구진 우리은행 준법감시인(부행장)은 사건에 책임을 진다며 사임했지만, 곧 IT그룹의 IT솔루션ACT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대규모 횡령사고 이후 사임한 BNK금융지주·경남은행의 준법감시인들은 각각 자회사 임원으로 전보된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지주 인사를 담당하는 이해광 본부장과 은행 인사를 담당하는 이명수 부행장, 박구진 전 준법감시인은 모두 부산 대동고 동문으로 알려졌다. 박 전 준법감시인도 한일은행 출신이다.

최근 금융권을 달구고 있는 손 전 회장의 부당 대출 사건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부분의 대출은 전임 회장 시절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은행의 대응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감독당국에 따르면 은행 경영진은 지난해 9~10월께, 지주 경영진은 올 3월께 해당 사건의 전모를 확인했지만 보고는커녕 사후적인 자체 감사·징계를 단행하는 데 그쳤다. 이사회 보고 역시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선 이미 수년 전부터 사내는 물론 이사회에도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었지만 현 경영진 또한 이를 묵인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우리은행 출신의 한 인사는 "영업 관련 힘없는 보직은 상업 출신이고 인사, 재무 등 요직은 손 전 회장 때도 잘나가던 한일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며 "손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을 이사회나 감독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뭉개고 있었던 것도 한일 출신의 손태승 라인이 건재하기 때문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감독당국도 이런 상황이 되자 비교적 강한 어조로 임 회장 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현 경영진의 지연보고 등을 위한 추가 검사에도 돌입한 상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방송 출연을 통해 “새 지주 회장, 새 은행장 체제에서 1년이 넘게 지속됐는데 사건을 수습하는 방식에서 과거와 같은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신뢰를 갖고 바라보기보단 뭔가 오히려 숨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진상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경제금융부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경제금융부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경제금융부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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