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구영배는 재기할 수 있을까

연이은 'IT벤처 1세대'의 몰락
외적 성장을 혁신이라 착각한
기업가정신 부재 때문은 아닐까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은 정산 지연이 발생하기 직전 상품권 할인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벌였다는 것과 문제 발생 초기 그것을 ‘단순 시스템 오류’라 공지한 점이다. 그들은 평소보다 2배 많은 상품권을 팔았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돌아갔다. 판매자에게 돈을 주지 못할 상황을 예감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상품권을 뿌렸다는 정황 증거는 여럿 있다.

이를 추궁한 지난달 30일 국회 질의에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는 “상품권을 어떻게 줄여갈지 고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답했다. 상품권이 휴지 조각이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을 본인도 알았다는 의미다. 시스템 오류라는 거짓 보고를 믿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인정했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 같아 신뢰할 수 없다’라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말은 상당히 순화한 표현이다. 고의적인 사기 행각이 더 적확하다.

이런 기업과 기업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구 대표가 회생안으로 제시한 ‘K-커머스’는 또 다른 사기가 아닐까. 돈을 받지 못한 판매자를 주주로 하여 새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그의 제안에 많은 사람은 ‘판매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쇼핑몰을 누가 이용하겠냐는 비판도 있는데, 필자 역시 그곳에서 카드를 긁을 것 같지 않다.

구 대표에게 반론을 요청해봤다. 필자 문의에 그는 15년간 구상해온 생각이었다며 “이 비전만을 보고 뛰어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비판하는 언론이 무엇을 오해한 것이냐’라며 논리적 반박을 재차 요청했지만 “당연한 의심이고 질책”이라고만 답하고 연락을 끊었다.

필자는 이른바 IT벤처 신화의 주인공으로 칭송받는 기업인 몇 명을 만나 꽤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성공에 딸려온 사회적 위상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성향을 말한다. ‘혁신을 이루었다’라는 자부심은 시쳇말로 하늘을 찌른다.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고속 성공이 곧 혁신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글로벌 IT기업이 깔아놓은 혁신의 판에 재빨리 올라탄 것은 산업 변화 흐름을 감지한 영리함에 불과하다.

반면 자신의 사업이 개인적 성공을 넘어 국가경제나 국민의 재산, 사회 안전 같은 단어와 연결돼 버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의 흔적은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종종 ‘요새 무엇이 돈이 된다’ ‘외국의 유명 경영자가 어디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더라’와 같이 금전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필자의 그런 개인적 느낌과 IT벤처 스타들의 연이은 몰락에는 일정 부분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주가조작 혐의로 대표적 IT벤처 스타 한 명이 추락했다. 이번엔 고객의 돈을 유용하고 위기를 감지하고도 전산 오류라는 거짓 정보를 퍼트린 악질적 사건이 'e-커머스 1세대 대표주자'라는 사람에 의해 벌어진 현실을 우리는 씁쓸하게 목도하고 있다.

G마켓 성공 등 구 대표의 지난 성과들은 과연 혁신의 산물이었을까. 그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던 것이며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구 대표와 그 주변 기업인들은 재기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 장사꾼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일까.

편집국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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