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기자
삼성전자가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경기 평택 캠퍼스 내 증설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건설 중인 평택 4공장의 4개 단계공정(PH) 가운데 파운드리보다 HBM 라인을 먼저 짓기로 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한 만큼 본격적으로 경쟁의 고삐를 당길지 주목된다.
26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평택캠퍼스에 짓고 있는 4공장의 4개 PH 가운데 D램 등 메모리를 만드는 PH3를 먼저 시공하기로 공사 계획을 수정했다. 삼성전자는 당초 파운드리 경쟁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PH2와 PH4를 우선적으로 구축하기로 했는데, 최근 HBM3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공사 방향을 완전히 튼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D램은 HBM을 만드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시기상 다음 달 엔비디아에 HBM3를 납품해야 하는 상황 등에 맞춘 조치로도 풀이된다. HBM은 D램을 여러 겹 쌓아 올려 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의 대역폭을 넓혀 처리 속도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만들려면 많은 양의 D램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공장의 PH 공사 순서 등은 당시 상황에 맞춰서 항상 변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계속해서 D램 생산라인을 늘리고 강화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곧 HBM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특히 퀄테스트를 받고 있는 5세대 HBM3E 12단 제품의 공급 여부도 곧 결정될 것으로 전해진다. 엔비디아 내부 소식에 정통한 대만 반도체 업체들 사이에선 삼성전자의 HBM3E가 엔비디아의 퀄테스트를 통과해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에 발표할 것이라는 후문이 적지 않다. 여기에 내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다음 세대 HBM4까지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D램의 생산 규모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현재 화성공장의 4개 라인 등에서 D램을 만들고 있다.
D램 생산라인 확장 외에도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HBM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초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조직 개편을 통해 메모리사업부 내에서 운영하던 HBM 개발조직들을 모아 HBM 개발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었다. HBM 개발팀은 차세대 HBM 연구개발(R&D)에 집중해 왔다. 삼성전자가 힘을 주면서 향후 HBM 경쟁 판도도 달라질지 주목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시장 선두 자리를 선점한 SK하이닉스보다 앞선 기술력을 입증해야 승산이 있다. 경쟁은 결국 엔비디아의 선택을 통해 판가름 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향후 출시할 고성능 제품에 누구의 HBM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대만 연합보 등 외신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용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의 주문량을 당초 계획보다 25% 늘려 HBM을 이전보다 더 많이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에 있다. HBM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