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정부재정 투입 없으면 ‘노답’'[이슈인터뷰]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공동저자

“어떻게 계산해 봐도 국민연금이 재정안정을 달성할 방법은 국고 투입뿐이에요.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고, 보험료를 일정선 이상 걷는 건 세대 간 혐오를 조장할 수 있어요. 정부재정 투입이 늦어질수록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게 됩니다.”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불편하더라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씩 연금에 넣느냐, 덮어두고 뒷세대에게 떠넘기느냐 문제”라며 “이대로 두면 젊었을 땐 기성세대를 미워하고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의 혐오를 받는 게 한국인의 숙명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제4·5차(2017~2023)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에 모두 참여한 연금 전문가다. 2014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이래로 연금개혁 논의에 함께했다. 지난 2월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담은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를 발간했다.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지난 13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국민연금 폐지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20대 입장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부당하고 차라리 없애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제도일 수밖에 없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누구나 나이가 들면 경제력을 상실한다. 집단적 노후소득 보장체계인 국민연금 제도가 사라지면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대단히 커진다. 한 개인이 어느 시점에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할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지 않나. 개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어떤 점에서 효율적인가.

▲국민연금을 청산하고 각자 노후자금을 굴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떠올려 보자. 세상의 모든 투자처를 크게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나눈다면 20·30대는 위험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은퇴를 10여년 앞둔 시점부터는 현금화를 고려하니 위험자산이 부담스럽다. 리스크를 차츰 줄이고 60대가 되면 안전자산에 ‘올인’하게 된다. 낮은 리스크를 취했기 때문에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로 리스크 로 리턴’이다.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수익률이 1.5배 정도 차이 난다.

-‘장수 리스크’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3세로 늘었다면 노후 준비는 90살 정도까지 해둬야 한다. 이 노후자금을 30여년 동안 아껴 써야 하니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다. 노인 개개인도 삶의 질이 떨어져 고통이지만 국가 입장에서도 손해다. 노인들이 외식을 하거나 지방 여행을 가거나 손주에게 용돈을 주거나 하면서 돈을 돌게 만들어야 해서다. 국민연금 제도가 있으면 한 달에 수령할 액수를 알고 이에 맞춰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어떤 상태길래 장점이 많은데도 폐지 주장이 나오나.

▲발등에 불 떨어진 상태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명대로 떨어지면서 과거와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 다음 세대의 경제력으로 현재 세대의 노후를 책임지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도 바닥이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기금이 충분치 않자 연금 수령액을 사실상 깎아버린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기금이 부족하면 약속된 돈을 못 받는다는 인식이 커졌다.

-책에서 연금 개혁안으로 ‘3115’를 제안했다.

▲보험료와 정부재정, 기금운용의 역할을 잘 조율해 연금 재정을 튼튼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로 ‘3%’포인트 인상하고, GDP의 ‘1%’ 규모의 재정을 연금에 투입하자. 많은 사람이 놓치는 부분인데, 기금수익률 또한 활용할 수 있는 변수다. 연평균 기금수익률 전망치 4.5%를 6%까지 ‘1.5%’포인트 개선하자는 안이다.

-기금수익률 6%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나온 연평균 기금수익률 4.5%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계산값이다. 당시 사용한 방법은 국내주식·국내채권·해외주식·해외채권·대체투자 등 자산배분 비율에 자산별 기대수익률을 곱하는 식이다. 문제는 전체의 약 45%를 차지하는 국내주식·국내채권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관측되니 국내 자산의 수익률이 낮게 나오고, 목표 수익률도 4.5%에 그쳤다.

그런데 현시점 자산배분 비율이 2090년에도 그대로일까? 미래에 특정 자산군의 기대수익률이 고꾸라지는 걸 뻔히 알면서 그 비중을 그대로 둘 리 없다. 최근에도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줄이기로 하지 않았나. 자산배분을 달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5.5%가 적정한 전망치다.

-그래도 0.5%포인트를 더 올려야 한다.

▲주식·대체투자 등 위험자산 비중을 늘리면 어떨까. 국민연금이 지금 부담하고 있는 리스크로는 수익률을 0.5%포인트 더 올리기 어렵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위험자산 비중을 65%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70~75%까지 더 높이면 된다. 금융공학에선 7(위험자산):3(안전자산) 비중을 교과서적 포트폴리오로 본다. 노벨상 받은 업계 표준이다. 현행 6:4는 개인투자자를 위한 안정적 포트폴리오다.

-리스크를 더 부담하면 손실이 커지지 않을까.

▲수익률은 공짜가 아니다. 금융시장이 안 좋으면 당연히 더 손실을 본다. 2022년 시장이 악화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8%였는데, 7:3 비중이었다면 -12%까지 떨어졌을 거다. 그러나 좋은 장도 분명히 온다. 지난해처럼 증시·채권이 동반 강세를 보일 때 손실을 메꾸고 더 큰 운용수익을 낼 수 있다. 지난해 기금수익률이 역대 최고치인 14% 수준이었는데, 위험자산이 70%를 넘었다면 20%대 수익률도 가능했다. 손실이 무섭다고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면 결국 보험료를 더 거두는 방법만 남는다.

-해외 연기금 중 수익률 1위인 캐나다는 자산배분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

▲위험자산만 100%다. 캐나다연금(CPPI)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는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위험을 수용한다”는 표현이 있다. CPPI는 2008년·2022년 등 시장 상황이 안 좋았던 해에 -20%씩 손실을 봤지만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0%에 달한다. 우리도 캐나다처럼 10:0 비중으로 투자하면 수익률 6.5%라는 성적을 거둘 수 있다. 그럼 보험료율도 12% 밑으로 낮춰도 된다. 다만 위험자산 100%가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리스크 수준인지 설득의 문제가 남아 있다.

-기금수익률이 6%라면 보험료율을 12%로 올렸을 때 재정안정이 가능한가.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내는 돈보다 많이 받는데.

▲소득대체율 40%·기금수익률 6%로 계산한 결과, 연금 가입액과 수령액의 브레이크이븐(손익분기점) 지점은 정확히 보험료율 12%다. 연금 고갈 걱정 없이 ‘균형’이 되는 숫자다. 다른 나라보다 ‘덜 내고 더 받는’ 연금처럼 보이는 배경에는 1000조원 수준의 적립금이 있다. 캐나다나 유럽 국가 등 주요국은 연금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개혁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아직 1000조원이 있는 상태이니 개혁의 고통이 비교적 덜하다.

-보험료율을 12%보다 더 올리면 연금 재정이 더 안정적인 것 아닌가.

▲앞세대의 부채를 뒷세대에게 전가하는 모양새가 된다. 1988년 보험료율 3%·소득대체율 70%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연금 제도를 시작한 뒤 점점 보험료를 높이고 연금액을 낮췄지만 아직도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이렇게 불어난 부족분 약 1700조원을 미적립 부채(암묵적 부채)라고 부른다. 보험료율을 12%보다 높여 젊은층이 이 부채를 대신 갚게 하는 건 세대 간 혐오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중소기업·자영업자가 일정선 이상의 보험료를 받아들일 여력이 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근로자의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고, 자영업자는 보험료 100%를 온전히 내야 한다. 월 가입액 부담이 과도하게 늘면 연금개혁 자체가 무산될 우려가 있다.

-1700조원을 웃도는 암묵적 부채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어떻게 계산해 봐도 암묵적 부채를 해결할 방법은 정부재정뿐이다. 매년 GDP의 1% 규모의 재정을 연금에 투입해야 한다. 나도 세금을 많이 내기 싫은 사람 중 하나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이 재정안정을 달성하려면 국고 투입 없이는 ‘답이 없다(infeasible)’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2년 전 연구에서 도출했다. 재정 투입은 더 이상 옵션(선택)이 아니다. 이제는 책무다.

-재정 투입이 늦어질수록 암묵적 부채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고.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5년 전에 연금개혁을 이뤘다면 한시적으로 GDP의 1%를 투입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영원히 GDP의 1%를 연금에 넣어야 해결할 수 있고, 5년이 더 지나면 1.5% 규모로 늘어난다. 연금이 고갈된 다음의 정부는 GDP의 6~8%씩 투입해야 한다. 지금 불편하더라도 1%씩 재정 투입을 빠르게 하느냐, 덮어두고 뒷세대에게 떠넘기느냐 문제다.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북콘서트 자료.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여야 절충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을 44%)으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회가 제시한 개혁안은 어떻게 보나.

▲여야가 거론한 절충안대로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각각 13%와 44%로 올려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유지된다. 국고 투입과 기금수익률 등 다른 숫자를 고정한다면 말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옳은지 그른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비용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즉 보험료율 12%가 아닌 13%를 낼 여력이 된다면 소득대체율 44%도 충분히 가능하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 말고 ‘받는 돈’을 늘릴 방법이 있나.

▲연금 제도가 국민연금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인이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부담하는 금액이 굉장히 많다. 국민연금 9%에 퇴직연금 8.3%, 개인연금 세액공제 한도는 연 900만원 수준이다. 경제활동 기간에 세전소득의 20~25%를 노후자금으로 내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 속 많은 제도로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하면서 노후소득을 보장할지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는 정부안을 낼 타이밍이다. 연금개혁 논의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는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속상할 것 같다. 국민연금을 이대로 덮어두면 젊었을 땐 기성세대를 미워하고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의 미움을 받는 게 한국인의 숙명이 된다. 젊은이가 노인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국가가 만들진 말아야 한다. 지금이 연금 제도를 고칠 마지막 기회이니, 정부 안을 제시하고 이 난리를 마무리 짓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1977년생으로 199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등 위원을 역임하고, 4·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기금운용발전위원회에 참여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경제금융부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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