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은기자
내년 의대 정원 1500명 증원으로 수험가에선 ‘의대 신드롬’이 나타나고 있지만 당장 의료계에서는 수련과 실습의 난맥상, 교육의 질 저하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올해 수업 거부 시위에 나선 의대 2024학번 3058명이 집단유급을 맞을 경우 4567명으로 증원된 2025학번과 포개져 최대 7625명이 같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거점국립대학의 의대 교수 1000명을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국립대 10여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립 의과대학의 교육인력과 의대 투자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사립대의 의대 교육 지원금은 등록금이 아니라 부속 병원 수익으로 인한 잉여자금에서 나오는 구조”라면서 “(집단유급 또는 증원 현실화가 나타나는) 내년부터 교육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중장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2024학번 의대생들의 유급으로 인한 구멍은 2030년도 신규 전공의 수급에 차질을 빚게 하고, 전공의 공백으로 인한 전문의 배출 중단은 연쇄적인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병원 중에 몇몇은 벌써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재정 악화는 부속 대학의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가정엔 올해 휴학계를 낸 의대생, 사직한 전공의의 연내 복귀는 어렵다는 현실론을 전제로 한다. 한 종합병원 의사는 “지방의대생은 반수를 계획하고, 전공의 중 일부는 미국의사시험을 준비하거나 전공과목을 바꾸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의대 증원으로 ‘수준 미달’의 의대가 나올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학생 수와 별개로 교육 환경 여건이 구축되지 않으면 의대 자격이 박탈될 수 있어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의학교육 평가 인증 기준(기본기준 92개·우수기준 51개)을 토대로 각 의대가 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본다. 평가 항목은 강의실이나 실습실 등 교육 기본시설과 임상실습이나 소규모 학습을 위한 교육 지원시설, 교육 프로그램, 학생 복지 등이다. 결과에 따라 각 의대는 기존 인증기간(2년·4년·6년)이나 유형(인증·불인증)이 변경될 수 있다. 의평원의 심사를 뚫지 못하면 의대 지위를 잃는다.
2018년 서남의대가 의평원 인증에 실패해 폐교한 대표적 사례다. 서남의대는 부속병원 미비, 교수들 기준 미달, 교육과정 미흡으로 의평원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갈 곳 잃은 서남의대 학생들이 전북대와 원광대에 편입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증원된 대학 중에 교육의 질 문제를 일으킬 대학은 없어야 할 것”이라면서 “(서남의대 같은) 폐교는 마지막 수단이고, 중간 단계로서 평가점수에 따라 의대 정원을 유동성 있게 조절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의대 정원의 유동적 조정 문제는 기본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받아 교육부가 확정한다. 의대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해 범부처적인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