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100억 우스운 '황금땅'…韓재벌가 패밀리타운도[용산의 미래]

②대기업 총수 일가 터 잡은 용산
강남3구 전통 부촌 지위 위협

대통령 관저 들어서며 정치 중심지로
사생활 중시하는 연예인 선호도 높아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좌우로 난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호화로운 저택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만 성벽처럼 높게 쌓아 올린 담장 사이로 언뜻 보이는 집의 모습만으로, 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골목길에서는 위압적, 폐쇄적 분위기만 느낄 수 있다. 북쪽으로는 신당동·장충동을, 서쪽과 동쪽으로는 각각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옥수동을, 남쪽에는 한강을 접하는 서울의 중심부인 용산구는 이처럼 서울의 대표 ‘부촌’이 형성돼 있다.

삼성, 현대차, SK, 롯데, LG 총수 일가 자택 밀집… 한 채 100억대 기본

이곳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남동·이태원동에만 주택 5채를 보유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현재 삼성그룹 영빈관으로 사용 중인 ‘승지원’도 이태원동에 있다.

현재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이 일대에 거주지를 두고 있다. 범삼성가 일원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이건희 회장의 여동생)과 그의 아들 정용진 회장 등은 한남동에 산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자택.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도 이곳에 ‘패밀리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을 비롯해 장남 정의선 회장, 첫째 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사장, 셋째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 등이 고급 빌라촌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모여 산다.

이 밖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 김준기 DB그룹 창업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이 한남동과 이태원동에 거처를 두고 있다.

한남동·이태원동은 재벌가가 둥지를 튼 만큼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공시가격 상위 단독주택 10채 중 7채가 용산구에 자리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의 한남동 단독주택은 2016년부터 9년째 공시가격 1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 공시가는 285억7000만원이다. 삼성그룹 호암재단이 보유 중인 승지원이 171억7000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고, 4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이태원동 단독주택(167억5000만원)이었다. 경원세기(센츄리) 오너 일가가 보유한 이태원동 주택(164억6000만원)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한남동 주택(150억2000만원)이 각각 5위와 7위를 차지했다. 8위(139억원)와 10위(129억6000만원)도 한남동, 이태원동에 위치했다.

제일 비싼 아파트도 용산에…강남 아성 무너뜨려

단독주택뿐 아니라, 국내 최고급 아파트·빌라도 용산에 자리 잡고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나인원한남’과 ‘한남더힐’은 올해 들어 전국에서 거래된 매매가 상위 1·2위 아파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나인원한남’의 경우 전용면적 207㎡(3층)가 지난 1월 97억원에 팔렸고, ‘한남더힐’은 전용 235㎡(11층)가 지난 2월 95억5000만원에 나갔다. 전통 부촌 단지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175㎡·90억원)’와 압구정동 ‘현대2차(197㎡·80억원)’,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223㎡·78억5000만원)’ 등을 뒤로 밀어냈다.

지난해에도 한남동 ‘파르크한남’과 ‘한남더힐’ 등 용산구 소재 아파트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파르크한남’ 전용 269㎡(4층)가 그해 8월 180억원에 팔려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아파트 역대 최고가다. ‘한남더힐’이 2위로 같은 해 3월 전용 240㎡(5층)가 110억원에 거래됐다.

한남동 아파트가 강남권 아성을 뒤흔들기 시작한 건 2011년 ‘한남더힐’이 들어서면서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유명한 ‘한남더힐’은 단국대가 2007년 경기 용인시 죽전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남겨진 부지에 조성됐다. 당시 단국대는 남산, 응봉산 등의 자연경관 보호를 이유로 부지 전체가 ‘고도제한지구’로 지정돼 건축물 높이 제한을 받아왔다. 이로 인한 공간 협소 문제로 소송까지 벌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결국 2007년 죽전으로 캠퍼스를 옮겼다.

600가구 규모인 한남더힐이 32개 동에 저층 단지로 이뤄진 것도 고도제한 영향이다. 용적률 120%로 최고 높이가 지상 12층밖에 되지 않지만, 대형 평형 구성과 고급화 전략으로 수익성을 높였다. 뒤이어 2019년 나인원한남, 2020년 파르크한남 등 고급 빌라가 줄줄이 들어서 국내 대표 부촌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속도 내는 '황금 재개발' 한남뉴타운

용산구 일대는 한남뉴타운 사업으로 또 한 번의 격변을 앞두고 있다. 강북 최대 규모에 뛰어난 입지로 ‘황금 재개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한남뉴타운 사업은 현재 4개 구역(2·3·4·5구역)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조합원 간 이해충돌로 좀처럼 진척이 없다가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구역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한남3구역은 지난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그해 10월부터 이주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2020년 시공사(현대건설) 선정도 완료했다. 지하 6층~지상 22층, 197개동, 총 5816가구 규모 공동주택이 들어선다.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2구역은 사업시행인가 후 관리처분인가를 준비 중이다. 4구역과 5구역은 지난 1월 건축심의 접수를 완료하고 올 상반기 시공사 선정에 나선다.

4개 구역 개발이 완료되면 1만2000여가구 규모 초대형 단지로 거듭난다.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공원 개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개통 등 일대 개발 호재와 맞물려 강남권에 준하는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 전경

권력자 공관 모여들고 유명 연예인 선호 높아

한남동은 ‘재력의 땅’인 동시에 ‘권력의 땅’이다. 고위 공직자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외빈을 맞는 등의 외교 업무가 이뤄지는 공관(公館) 상당수가 한남동에 있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 공관이 1993년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3위 대법원장의 공관도 이 동네에 있다.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등의 공관도 한남동에 있다. 취임 후 광진구 자양동 자택에 살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해 한남동 시장 공관으로 이사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스페인, 인도, 이란, 태국 등 외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한남동에 이른바 ‘공관촌’이 형성된 것은 권력의 중심 사대문, 청와대로의 이동이 쉬워서다. 보안·경호 편리성도 높다. 미군기지와 국방부가 가까워 안전상 이점도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유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대통령 관저까지 들어서면서 한남동은 명실상부한 권력 중심지로 거듭났다. 윤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2년 11월 입주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은 종로구 삼청동 옛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으로 이전했다.

한남동·이태원동 일대는 사생활을 중시하는 유명 연예인들에게도 선택받은 동네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빅뱅 태양·배우 민효린 부부가 파르크한남에 살고 있으며 가수 싸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제니, 가수 비·배우 김태희 부부, 배우 송중기 등도 이곳에 거처를 두고 있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를 통해 서울 어디로든 이동이 편리하고 한강 조망권, 철저한 보안 등이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편집자주'금단의 땅'을 품고 있던 용산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 세기가 넘도록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용산미군기지는 국민 모두의 공간인 용산공원으로 탈바꿈했고 대통령실 이전으로 대한민국 권력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개발 계획도 본격 시작됐다.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확대 요구도 이어진다. 서울 한복판, 남산과 한강을 잇는 한강 변 '금싸라기 땅'임에도 낙후된 주거지를 여전히 품고 있는 문제도 있다. 서울이 권력과 기업,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용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은 한국 도시의 현재이자 미래다.

건설부동산부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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