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넷제로는 허상인가…화석연료 기업 승승장구

대형 석유기업 중심 빅딜 성사
엑손모빌·셰브런 M&A 주도
지난해 석유 수요 최고치
美 올 사상최대 원유생산 유력

신재생 에너지기업 고금리 여파
차입비용·세제 삭감으로 어려움
풍력기업 오스테드 800명 해고

탄소중립 달성이 세계적인 흐름이라지만, 정작 거대 화석연료 기업은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경쟁력 확보 목적의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업계에는 찬바람이 거세다. 돈이 안 되는 청정에너지 투자를 축소하는 에너지 업체들의 계획에 도리어 시장이 환호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몸집 부풀리는 화석연료 기업

20일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말부터 화석연료 업계에서는 대형 석유 기업을 중심으로 빅딜이 성사되고 있다. 지난 12일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엔데버에너지리소시스를 26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엔데버는 미국의 주요 원유 생산지인 텍사스 퍼미언 분지에서 가장 넓은 시추 지역을 확보한 업체다. 합병이 완료되면 시가총액 기준 미 화석연료 업체 중 5위에 머물렀던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바로 위 EOG 리소시스와 견줄 만한 업체로 거듭나게 된다.

최근 확인되는 인수합병(M&A) 트렌드를 주도한 곳은 업계 1, 2위 엑손모빌과 셰브런이다. 엑손모빌과 셰브런은 지난해 10월 각각 파이오니어, 헤스를 600억달러, 530억달러에 인수했다. 그해 12월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은 크라운록을 108억달러에, 지난 1월 체사피크는 사우스웨스턴에너지를 74억달러에 넘겨받기로 했다. 거대 화석연료 기업이 빅딜에 나서는 이유는 원유 수요가 계속 견고할 거라는 판단에서다. 재생에너지가 항공유 등 석유 제품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는 데다 보급 속도마저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사상 최대 원유를 생산할 것이 유력시된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리스타드 에너지는 올해 미국 원유 생산량이 역대 최고인 하루 136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5일 발표한 올해 세계 원유 전망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OPEC+ 비회원국의 생산량 증가 예측을 반영하면서 원유 하루 생산량을 1억380만배럴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석 연료에 대한 전 세계 수요 지속성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에너지, 클린테크 앤드 유틸리티 콘퍼런스에서 총 70억명에 달하는 석유 사용인구를 언급하며 전 세계 총 에너지 수요가 계속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석유 공룡 기업의 이익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엑손모빌, 셰브런은 지난해 각각 360억달러, 214억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최근 10년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에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주 배당금에도 뭉칫돈이 몰렸다. 엑손모빌과 셰브런의 지난해 주주 배당금은 각각 320억달러, 260억달러를 기록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를 제외한 미국 기업 중 가장 많은 배당 액수다.

업계가 여전히 산유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점도 화석에너지 성장론에 힘을 더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석유, 가스, 석탄 기업이 약 7조달러의 직간접적인 정부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산했다.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찬바람

반면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측된 해상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의 속사정은 여의치 않다. 고금리로 인한 차입비용과 원자재 비용 상승, 각종 세제 혜택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업계 상황은 주가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S&P500지수가 24% 상승했지만, S&P 글로벌 청정에너지 지수(SPGTCLEN)는 20% 이상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도 7% 빠졌다.

특히 유럽 최대 풍력 에너지 업체 오스테드가 직면한 최근 상황은 재생에너지 업계의 전반적인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오스테드는 지난 7일 최대 8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앞으로도 몇 달 안에 250명을 추가로 정리하겠다고 예고했다. 배당금 지급을 일시 중단하고 2026년 회계연도부터 지급 재개를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오스테드는 미 동부 해안에서 2개의 풍력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당시 오스테드는 이 사업으로 268억덴마크크로네(38억6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96억덴마크크로네(13억9000만달러)의 대손충당금까지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지난달 또 다른 미국 해양 프로젝트의 전력 공급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영국 최대 석유 기업 BP도 지난해 미국 동부 해안의 해상 풍력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에서 11억달러 손실을 입었다. 투자자들은 BP의 주가가 미적지근한 이유가 각종 신재생 에너지 투자에 있다고 본다. 이에 BP는 지난 6일 4분기 실적 발표에서 "화석 에너지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관련 투자에 늘릴 것"이라고 석유 유턴 신호를 시사하면서 투자자들을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에너지 기업이 청정에너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선언에 시장이 주식 매수로 답하는 사례도 확인된다. 미국 에버소스 에너지가 지난 13일 해상 풍력 및 수력 사업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다음 날 주가가 장중 8% 뛴 게 대표적이다. 이는 2020년 4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조 놀란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핵심 사업에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운영을 축소하고 있다"고 했다. 오는 6월께 완료될 매각 금액은 11억달러 규모다.

신재생에너지 부진 계속…"미국, 석유 포기 안 할 것"

이처럼 성장에 제동이 걸린 신재생에너지의 부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고금리에 따른 업계 투자 감소, 각종 프로젝트 지연, 기업 부채 증가 등 부정적 영향이 당분간 이어질 기세다. 세계 각국 간 이해관계 충돌 탓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 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점도 기존 화석연료 기업들의 낙관적 전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COP28)에서 190개 이상의 각국 정부는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에는 뜻을 모았지만, '단계적 퇴출(phase-out)'이라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는 데는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화석연료 산업을 버리지 않는 한 화석에너지 시대의 종말은 석유가 고갈되기 전까지 오지 않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한 외신은 "미국은 화석에너지 산업에서 세계 최대 플레이어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부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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