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대학을 틀어쥐고 좌지우지하겠다는 교육부의 고질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 대학의 자율을 보장해주겠다는 교육부의 ‘대학 규제 제로화’는 1년 만에 도루묵이 돼버렸다. 이번에는 ‘무전공’(자율전공선택) 선발과 지역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확대다. 교육부가 4426억원의 대학혁신지원사업 ‘인센티브’를 아무리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으로 착각하고 있다.
무전공 선발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81년 ‘졸업정원제’와 함께 도입했던 ‘학부제’가 바로 교육부가 강조하는 무전공 선발 제도였다. 들어가는 문은 넓히는 대신 졸업 자격을 엄격하게 강화해서 공부하는 대학을 만들겠다던 졸업정원제는 대학 진학률만 잔뜩 부풀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해주겠다던 학부제도 학생들의 무분별한 ‘쏠림’과 교수들의 ‘전공보호주의’가 맞물려서 만들어진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2009년에 화려하게 출범했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경험한 후에 다양한 전공 분야를 선택한다는 취지는 상당 부분 무색해져 버렸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한 학생의 36.1%가 경제학·경영학에 집중되었고, 인문학을 선택한 학생은 8%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컴퓨터공학을 선택했던 학생 254명 중 절반이 넘는 141명이 중도 탈락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무전공·자유전공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불합리하고 획일적인 대학입시에 시달리느라 정작 중요한 자신의 전공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무전공 선발은 더없이 좋은 제도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학은 대부분 자유전공에 가까운 방식을 선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전공 선발이 대학의 고질적인 ‘전공 간 벽 허물기’와 ‘융합인재 양성’에 도움이 된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학의 칸막이는 학생이 아니라 교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무전공·자유전공이 모든 대학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만능 해결사인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쏠림 현상을 외면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무전공 선발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무전공 선발이 대학의 기초학문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는 인문대의 반발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는 수능에서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소위 ‘이과’ 학생들의 ‘침공’ 덕분에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기초학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철학과는 25%가 사라졌고, 철학과의 입학정원은 약 40%가 줄었다. 인문학의 핵심인 국어국문학과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물리학·화학·지질학·해양학의 사정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험생들이 무전공 선발을 무작정 반기는 것도 아니다. 상위권 대학의 무전공 학부를 중도 포기하는 학생의 비율이 2배에서 5배나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의대 입학정원이 한꺼번에 2000명이나 늘어나는 내년에는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이제 진정한 의미의 ‘대학 규제 제로화’를 실천해야 한다. 대학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유아독존(唯我獨尊) 식의 아집에 빠져버린 교육부를 개혁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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