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준기자
출범한 지 3년이 된 고위공직자범죄수처(공수처)의 ‘지휘 라인’이 붕괴됐다. 처장과 차장 공백에 이어 대행을 맡은 부장검사까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다. 예고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처장 인선이 조속히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의 이탈 등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계속해서 후보 선출에 실패하고 있다. 최근 열린 7차 회의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고 두 달 넘게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공수처법상 7명 추천위원 중 5명의 동의를 얻어 후보 2명을 추천하고, 이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게 돼 있다. 심사 대상 8명 중 오동운 변호사만 최종 후보로 정해진 뒤 나머지 후보 한 명을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수처장 대행을 맡고 있던 김선규 수사1부장검사가 지난 7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부장검사는 과거 검찰에서 근무할 때 작성한 수사 기록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2심에서 6일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부장검사는 유죄 판결을 받은 다음 날 긴급 간부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공수처와 공수처 구성원들에게 누가 돼선 안 된다고 판단, 사직하기로 결심했다"라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 출신인 김 부장검사가 공수처 부장검사로 임용됐을 당시,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김 부장검사는 후보추천위 회의가 열리는 이달 29일까지 업무 인수인계 등 현안 처리를 한 뒤 정식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김 부장검사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처장대행과 차장대행은 직제순에 따라 수사2부장과 수사3부장이 맡게 된다.
이달 열리는 후보 추천위 회의에서도 최종 후보가 정해지지 않는다면, 당분간 공수처는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발 사주 의혹 사건 1심에서 유죄를 이끌어내면서 출범 이후 첫 승전보를 올렸지만, 수장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구성원들의 연쇄 이탈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공수처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잡음만 계속되면서 출범 초기 임용됐던 1기 검사 13명 중 현재 남아있는 검사는 단 2명에 불과하다. 공수처 검사 정원인 25명도 다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 이탈까지 발생한다면, 사실상 공수처는 명맥만 유지한 채 검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라는 핵심 기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장검사 출신 A 변호사는 "공수처를 설치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고, 출범한 뒤에는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며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오랜 기간 유지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