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우리나라와 일본이 사이가 좋지 않아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나." 달변가로 꼽혔던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10여년 전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두고 남긴 얘기다. 은행권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딱 이렇다. 총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여야 모두에게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
야당은 당 수뇌까지 총출동해 '횡재세' 카드를 밀어붙일 태세다. 이중과세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다. 직전 5년 평균 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분을 초과수익으로 규정하고, 이 초과수익 중 40% 이내의 금액을 기여금으로 거두자는 게 야당 주장이다. 법안 통과시 올해 은행들이 내야 할 기여금은 약 2조원에 달한다.
여당은 야권의 이런 움직임에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못 된다. 불을 댕긴 건 정부·여당이다. 벌써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정부·여당은 올 초엔 '이자 장사'란 말로 압박하더니, 최근 들어선 '은행 종노릇', '갑질' 등의 발언으로 은행권에 추가 기부·출연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 40조원이 넘는 정책모기지와 금리 인하 압박으로 은행권의 파이를 키워놓은 것도 정부·여당이다. 언제나 극한 충돌을 이어가는 여야지만 은행 앞에선 대통합을 이뤄낸 셈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언급하듯 고(高)금리에 민생고가 심화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은행에 이익이란 불황이 닥쳐왔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파제’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내 은행의 상반기 말 기준 충당금 적립률은 0.93%로 미국(1.67%)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아울러 사기업, 주식회사의 이익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과 공유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대통합을 이뤄야 할 부분은 공적(公敵) 만들기가 아니다. 역사가 증명했듯 희생양 만들기는 결과적으로 후과가 좋지 않다. 우리 정부나 사회가 민생고를 해결할 여력이 부족하다면 손쉬운 은행권 때리기가 아니라, 어느샌가 정치권에서 쏙 사라진 구조개혁·증세 등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논쟁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