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기존 연내 중의원 해산 계획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매체들이 보도했다. 기시다 정권 출범 이후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지지율이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중의원 해산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시다 총리의 연내 재선 확정이 불투명해지면서 향후 자민당 내 파벌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9일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내 고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연내 중의원 해산을 보류할 의향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원래 이달 중의원 해산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내각 지지율이 정권 출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총선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워지자 일단 경제 대책에 집중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따라 중의원 해산 시기는 내년 초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에서 중의원 해산시기는 총리의 재선이 걸린 총선 개최와 직결돼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일정으로 손꼽힌다. 중의원 해산 권한은 총리가 갖고 있는데, 본인의 재선이 유리할 정도의 지지율이라고 판단될 경우에 중의원을 해산한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일본 내각제에서는 총선에서 다시 집권 여당이 승리하면, 기존 총리가 다시 당 총재로 선출될 수 있으며 집권당 총재로서 총리로 재취임하는 정치적 구조를 갖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일단 조기 총선 준비는 보류하고 대신 오는 20일 임시 국회에 제출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통과, 감세, 저소득 세대 현금 지원 등 약 17조엔(147조원) 규모의 종합 경제 대책에 힘을 쏟기로 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올해 중순부터는 여당과 세제 논의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중의원 해산으로 정치 공백을 낳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는 "(기시다는) 일련의 대책으로 일단 디플레이션 탈피에 집중할 생각으로, 주위에도 당분간 해산을 연기할 방침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정권이 기존에 예상했던 중의원 해산 시기는 가을 임시국회였다. 이를 위해 9월에는 개각을 통해 정권 쇄신에 나섰고, 지난달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에 해산 명령을 청구해 아베 정권부터 불거졌던 자민당과 통일교와의 접점을 지우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토대로 장기집권의 틀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물가 등 일본 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 기시다 총리가 방위비 확충을 위한 증세를 주장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기시다에게는 '증세 안경'이라는 별명까지 붙었고 보궐선거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야유받기도 했다. 결국 지난달 말에 치른 보궐선거는 자민당 압승 대신 1승 1패로 결국 한 석을 야당에 내줬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에게 붙은 '증세 안경'이라는 별명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여론을 불식시키고자 기시다 총리는 이번 경제 대책에 1인당 최대 4만엔(34만원)의 세금을 일률적으로 깎는 3조엔 규모의 감세안까지 내놨다. 그러나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중의원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급락은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일본 모든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취임 당시 45%를 기록했던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0% 정도로 떨어졌다. 이는 2012년 자민당 집권 이후 역대 최저치다. 일본의 한 온라인 매체는 증세 안경이라는 별명은 '감세 망할 안경(쿠소 메가네)'으로 악화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는 "총리 구심력까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설령 중의원 해산 단행 이후 총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를 대체할 다른 인물이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막판까지 지지율 반등 방안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대책 외에도 본인의 강점인 외교를 살리기 위해, 정상외교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로, 이 전까지 중의원을 해산하고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돼야 연임에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