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가 바꾼 LG 의인상…'장기선행' 숨은영웅 5년간 30명 발굴

묵묵히 사회공헌한 이들 의인 포상

구광모 ㈜LG 대표는 2018년 6월 그룹 회장이 된 뒤 "진심이 담긴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더 다가가자"고 했다. 이후 LG 의인상 수상 범위를 인명구조, 사고·범죄 대응 인원에서 장기선행 시민으로 늘렸다. 다른 사람 목숨을 구한 이에게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간 묵묵히 이웃에게 봉사한 시민도 의인으로 인정하도록 바꿨다.

구 대표 취임 이후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전통과 뜻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일 중 하나가 의인상 수상 범위를 장기선행한 의인까지 확대한 것이다.

LG 의인상 시상은 대기업 총수 주도로 그룹과 관계없는 일반인에게 상을 주는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다. 한국 기업 중 처음으로 LG가 시작했다. 2015년 구 선대회장 지시로 LG복지재단이 만들었다. 다른 사람 생명을 구한 이에게 소정의 상금과 상패를 줬다.

구 선대회장이 경기도 의정부 화재 사고 현장에서 주민 10명을 구한 이승선씨에게 사례하려다 '돈은 됐고 술이나 사라'는 답을 듣고 정례적, 공식적으로 의인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위원회 심의 과정을 거친 뒤 상금과 상패를 주자는 아이디어였다. LG는 상금이 얼마인지는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고 상을 받은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 대표는 2018년 회장이 된 뒤 의인상 항목에 장기선행을 추가하자고 했다. 이듬해 1월부터 장기선행 수상자가 배출됐다. 기존 시상 방식으로는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이웃을 돕는 이들에게 제대로 사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LG 관계자는 장기선행 시민을 "타인을 위해 오랜 기간 묵묵히 봉사와 선행을 다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몇 년 봉사해야 장기선행 시민이고 몇 살쯤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상 받은 사람은 총 201명이다. 2015년 9월부터 2018년 말까지 90명, 2019년 1월부터 지난 14일까지 111명이 의인상을 받았다. 2019년 이후 수상자 111명 중 30명(27%)이 장기선행 수상자다. 30명을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4명(13%), 50대 10명(33%), 60대 7명(23%), 70대 4명(13%), 80대 3명(10%), 90대 2명(7%)이다. 30명 중 데이터가 있는 25명의 평균 봉사 기간은 28.9년이다.

백낙삼 마산 신신예식장 대표.[사진출처=연합뉴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는 80대 백낙삼 대표는 주인공 30명 중 한 명이다. 2021년 11월 LG 의인상을 받았다. 1967년부터 54년간 가난한 부부 1만4000여쌍에게 무료 결혼식을 올려줬다. 백씨는 "돈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상금의 일부를 다른 사람과 나눴다. 111명 중 35명이 백 대표처럼 상금을 다른 이웃에게 나눠줬다.

광주에서 치과를 운영 중인 80대 박종수 원장은 1965년부터 55년간 의료봉사를 하고 2020년 9월 상을 받았다. 그는 1991년부터는 무료급식소 '사랑의 식당'에서 배식봉사도 했다.

학계·의료계 인사도 있다. 고영초 건국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1973년 가톨릭 학생회에 가입한 뒤 매주 서울 쪽방촌 등 의료취약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48년간 봉사한 끝에 2021년 5월 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수두증(뇌의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질환) 환자가 내원 시기 이후에도 소식이 없자 집으로 찾아가 의식 잃은 환자를 건대병원으로 이송한 뒤 직접 수술해 그를 살렸다.

LG 의인상은 다른 기업들에도 영감을 줬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부터 포스코청암재단이 선정하는 '포스코 히어로즈'다. 사회에 봉사하는 평범한 영웅들을 뽑아 상을 준다. LG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다른 기업 7~8곳에서 LG에 의인상 시상 체계에 관해 문의했다"고 했다.

LG 의인상은 회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활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LG 관계자는 "ESG 경영 지표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인을 찾아 제대로 포상하는 CSR 활동"이라고 했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ESG 경영'이란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환경 및 사회적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영활동이다. 반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이윤추구 활동 이외에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말한다.

산업IT부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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