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정치는 두 개의 시계로 돌아간다. 하나는 정치 본연의 시계, 또 하나는 세상의 시계다. 5월이 가면 6월이 오고, 6월이 가면 7월이 돌아온다. 그게 세상의 시계다. 하지만 정치의 시계는 세상의 시계와 동일한 속도로 흐름을 맞추지는 않는다.
발걸음을 멈출 때와 쉬어갈 때, 조금 빨리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정치의 예의이고,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거는 12월에 열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듬해 2월 새로운 대통령 취임까지 2개월은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하는 시기다.
지는 해와 뜨는 해의 공존. 현직 대통령은 퇴임의 시간을 준비하고, 신임 대통령은 취임의 시간을 기다린다. 헌법이 보장한 임기 내의 상황이지만, 현직 대통령은 자기가 행사할 모든 권한을 있는 그대로 펼치기 어렵다.
신임 대통령을 위해 비워둬야 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두 달의 여유 기간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당장 내일 또는 모레 대통령 자리가 바뀌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국가의 주요 행사나 대통령으로서 참석이 필요한 자리에 누가 가야 하는지 애매해질 수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3월에 대선을 치르게 되면서 지난해 5월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8일에 벌어진 일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정치권에서도 비중을 두는 행사다.
5월8일이라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퇴임을 이틀 앞둔 시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을 이틀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의 부처님오신날이라면 현직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거나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8일 부처님오신날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메시지를 전했다. SNS로 대통령 메시지를 전한 것은 신임 대통령에 대한 배려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부처님 오신 날, 치유와 희망의 봄을 기원한다. 부처님의 가피(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와 함께 삶이 연꽃처럼 피어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교는 자비와 나눔으로 포용과 상생의 마음을 깨웠고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되찾았다”고 강조했다.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부처님오신날 본연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이는 퇴임을 앞둔 대통령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취임을 기다리는 대통령 메시지에는 미래에 관한 구상이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직접 참석해 국정운영 포부를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공동체를 위해 연대와 책임을 다한다면 매일 매일이 희망으로 꽃 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우리 앞에 여러 도전과 위기가 있지만 다시 새롭게 도약하고 국민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어려운 이웃들을 더욱 따뜻하게 보듬겠다”고 다짐했다.
부처님오신날에 전한 메시지에는 국정운영 다짐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대통령 취임식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국정운영 밑그림을 살필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2022년 부처님오신날에는 뜨는 해와 지는 해가 공존하는 상황이 연출됐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모습을 다시 볼 기회가 있을까.
차기 대선이 열리는 2027년, 부처님오신날은 5월13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임 대통령이 취임하는 5월 10일 이후다. 2027년 부처님오신날은 차기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공휴일이다.
이날 대통령 메시지는 2022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국정운영의 비전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